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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창조이고 생명의 약동이다

솔직히 처음엔 아이들과 들살이를 가는 게 좀 두려웠다. 저녁 마을밥상에서 한 아이가 나를 보며 맑디맑은 웃음을 지어줄 때, 나에겐 그런 맑은 마음이 없다고 느끼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두려웠던 거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 한켠에 있던 기대를 깨워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마을학교로 들어서는 내게 와락 안기는 한 아이를 꼬옥 안으며 두려움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인간이 살아가며 잃어버리는 그것, 뭇생명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아이들에겐 있었다.


한강을 따라 차로 진득하게 달려 유명산에 도착했다. 도착 후 점심 먹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자유놀이'를 시작했다. 솔잎을 주워 음식을 만들던 친구들은 어느새 '식당'을 개업했고, 잣을 주워 모으던 아이들은 잣 찾기, 잣 까기, 잣 분류하기 등 합심해서 각자 원하는 일을 찾아 했다. 산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얼마 후 선생님 진행으로 '모둠놀이'를 시작했다. 각 모둠별 이름을 정하란다. "우리 모둠은 뭐로 할까?" 아이들이 거침없이 의견을 표출한다. '산들' '푸른 강' '파란 하늘' '잣나무' 중 하늘과 강이 대세였다. 결국 둘을 합쳐 '파란하늘 푸른 강', 줄여서 '늘강'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아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모둠 이름을 외치며 놀이에 임하는 듯했다.

저녁 먹고 산책하다 귀를 귀울이니 활기찬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어깨동부하고서 엉덩이 들썩이며 노래하고 있었다. 오호라, 장기자랑 시간이구나. 연극, 노래, 악기 연주, 율동 등 장르도 다양하다. 자그마한 손을 번쩍 들어 별을 가리키고 부르던 '밤하늘 별들', 인디안 처녀처럼 휘이휘이 손을 돌리며 추던 율동 '트랄라랄라', 환상적인 화음과 절제된 리듬이 인상적이던 리코더 합주, 센스 있는 소품 사용, 절묘한 캐스팅으로 큰 웃음을 준 연극 '백설공주', 웃음기 가득하면서도 진지한 스토리가 있는 연극 '범인을 찾아라'와 '빨간모자', 대본까지 써가며 연극을 준비하고 연출한 아이들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무대를 즐겼다.

아이들은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했고, 그것을 표현하길 원했다. 차에선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가사를 바꿔서 마을학교 친구 각자의 모습을 노래에 담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밤하늘 별들이 그렇게 멀다지만~ 가만가만 부르는 내 노래를 듣나봐요~"를 "솔이가~ 솔이가 그렇게 귀엽다지만~ 토끼를 따라 하다 토끼가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담아 노랫말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었다. 듣던 나도 어느새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곤충박물관 체험실습장에서, 애벌레를 만져보고는 도로 놓아줄 때 툭 던지거나 떨어뜨리면 놀랄 수 있다고 말해준 아이, 과제를 수행하려고 나뭇잎을 따며 나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아이 등 여러 아이가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생명을 대하고 있었다. 생명과 교감함으로 아이들의 생명의 기운이 더 힘차게 약동 되는 것 같았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늘 고마워, 사랑해" 마을학교 아이가 친구에게 보낸 생일 엽서였다. 아이들은 들살이 중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 미리 준비해온 카드를 읽었다. 다양한 편지 형태와 편지글이 있었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해 몸을 배배꼬며 편지를 읽는 아이들이었지만 진심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녀석들 마음으로 썼구나' 싶었다. 생일 맞은 이도 진심을 읽었는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환하게 떠있는 둥근 달이 아이들 얼굴 같았다. 마지막 날 용문사에 들러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어느덧 우리의 들살이는 끝을 향해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며 생명에 대해 무뎌진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닭은 치킨일 뿐이고 나무는 그늘일 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도 상품으로, 가격으로 단번에 규정할 수 없는 엄연한 생명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창조이고 약동이다. 자문해본다. 아이들에게 한껏 받은 영감을 가지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력을 잘 지켜보며 관계해가야겠다. 충만한 생명의 약동을 잃지 않고 책임있게 살아가고 싶다.

김승권 |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과 새로운 꿈을 품고 새날을 살고 있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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