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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고마움 어찌 맛으로 평가할까요
칭찬받고픈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도 고마운 밥상을 차립니다

저는 밥을 짓고 나서 긴장하는 편입니다. 음식이 맛있게 된 날은 마음이 편하지만, 실수로 맛있게 먹기 힘든 음식이 만들어졌을 때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손님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를 살피며 괴로워하곤 했습니다. 아직도 조금 그러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군대에서 1년, 수유마을에서 3년을 매일매일 밥 짓다 보니 자연스레 긴장하고 걱정하던 버릇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한 요리에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감을 잘 갖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마음이 편해지고 그러지 못할 때는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굳어집니다.

그런 제가 밥 짓는 일을 하겠다고 마을에서 식당까지 열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군대시절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GP, 외딴 곳에서 근무하며 서른 명이 먹을 밥을 지었습니다. 처음 하는 밥이라 서툴렀을 때인데, 고참도 후임도 간부도 모두 맛있게 먹어주었습니다. 당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

대학교 공부를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부모님 기대에 맞춰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잘 맞지 않는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자퇴 후, 군대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멀리서 꿈을 찾지 말고,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좋은 밥집을 차리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집 밥처럼 건강한 음식을 차리는 밥집이 마을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한 마을 사는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밥집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며 반겨주었습니다. 요리에 자신이 없고 제가 한 음식을 돈을 받고 파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웠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제가 이 일을 좋아하니, 한 번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부족한 점은, 하면서 성숙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식당 창업의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밥상을 차리며 밥상에 자신을 내어준 생명을 생각해봅니다. 요리하는 사람의 솜씨는 모자랄 수 있어도 생명의 가치는 모자라지 않습니다. 한 생명이 자신을 내어준 귀하고 고마운 일을, 맛있다 맛없다고 쉽게 평가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한 생명을 앞에 두고 ‘맛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저의 자의식이 부끄러워집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몸에 좋은 요리로

이제는 다른 사람이 해준 밥은 다 맛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수고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맛을 평가하려는 태도를 주의하게 됩니다. 여러 식당을 다녀보고 여러 사람의 평가를 들어보았는데, 맛나기로 소문난 식당은 결국 지나치게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진 음식들을 잘하는 곳입니다. 부드러운 고기 요리 없이 맛있는 식당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밥상에서 그런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유혹이 들 때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제 입맛이 자극적이고 부드러운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저의 몸에 유익이 되는 음식을 스스로 찾아서 조리해 먹기에는 무기력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장 맛있다는 칭찬을 받기보다는 손님의 몸을 생각하게 됩니다. 매일매일 먹을 밥이니 손님 몸에 부담을 줘서도 안 되고, 단골손님들도 싱겁고 거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시니 욕심을 안 부리게 됩니다.이제껏 음식점을 갈 때면 음식을 사먹으면서 ‘나는 돈을 냈으니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식당의 외양과 서비스와 음식 맛을 비교하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한 음식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남의 시선을 그렇게 의식하며 살아왔나 봅니다. 음식을 평가하겠다는 오만한 마음이 결국 저를 괴롭게 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마음은 또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싶다는 마음을 낳고, 결국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기 위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밥상에 오는 손님수를 늘리고 싶었고 밥집을 오래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지향은 결국 밥상에 오는 분들을 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칭찬 받지 못했을 때 괴로워하는 마음은 똑같이 ‘내가 높아지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음식이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이 음식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만난 좋은 인연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생명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함께 수고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 제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란 솜씨지만 맛있게 드셔주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내려놓겠습니다. 오늘 하루 좋은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준 생명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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