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땅, 제주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
1월 23일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4·3평화공원이었습니다. 1947년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려던 5·10선거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 대다수가 선거에 불참하였고,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민들을 학살합니다. 제주도민 상당수를 극좌세력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치열한 역사 인식이 없는 나라에 비극적인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말로만 듣던 강정마을 현장의 생생함을 체험해보고 싶어 이렇게 1월 22~24일 열린 제주평화순례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해군기지 건설현장 입구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천정만 있고 삼면이 뚫린 천막이었지만 햇볕이 들어 많이 춥지는 않았습니다. 앉으라고 건네주시는 의자들에는 털로 짜인 예쁜 깔개가 있어서 겨울에 바깥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막 앞에는 공사차량들이 드나드는 문이 있었고, 근처에 최근 지어진 해군관사가 비죽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 강정 지킴이들이 공사현장 출입구에 섰습니다. 천막에서 드리는 미사가 공사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중계되고, 공사장에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강정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이었습니다. 끝난 다음에는 모두가 공사장 문 앞으로 와서 의자를 놓고 앉았습니다. 전경들이 의자를 하나씩 들어 옮겨버리자, 다 같이 손을 잡고 문 앞을 돌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교묘하게 차량들의 공사장 출입을 저지했습니다. 즐거운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경찰들이 지킴이들을 압박해 들어올 때면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그곳에도 몇 년간 지속되어온 지킴이들의, 공동체로서의 삶이 있었습니다. 대만에서 온 에밀리는 유창한 한국말로 자신의 강정생활을 소개했습니다. 대학시절 '개척자들'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한국의 강정을 만나 이곳 주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강정마을에서 처음으로 한국 군대가 가진 폭력성을 목도하고 병역거부를 결심한 남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활동가 박윤애 님 집에서, 송강호 선생님과 더불어 또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정이 낮은, 약방이었던 집을 개조해서 살고 있는데 여전히 약방집이라고 불리고 있답니다. 윤애 님과 강정에서 만나 가정을 이룬 남편은, 기증받은 보일러를 설치하기 위해 여러 공구들을 뚱땅거리고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시와'라는 갓난쟁이 아가가 있습니다. 윤애 님은 생계를 위해 우체국에서 일을 하고, 한편으로 남편과 귤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엔 활동가로서의 고생보다는 즐거움과 생명평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강정마을에 대한 애통함이 이 젊은이들을 시골에 불러들였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이땅의 평화와 생명을 위해 바치고 있는 이들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영현 |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주체적인 진로 개척을 고민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