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분에 넘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유


지난 봄 이곳 양평 오촌리에 기혼 가정들과 비혼 친구들이 마을을 이뤄 이사를 했습니다. 직장을 양평으로 옮긴 친구들, 휴직을 하고 새로운 생명을 몸 안에 모신 이, 직장의 근무조건을 유연하게 바꾼 이, 농農생활에 푹 빠진 이…. 모두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지를 꿈꾸며 한몸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저는 집 앞에 있는 텃밭에서 겁 없이 많은 생명들을 만나가고 있습니다.

서울 토박이에다 작은 벌레조차 무서워하는 제가 이렇게 농사일을 재밌게 하리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장날 시장에서 초보티를 팍팍 내며 구입한 삽, 쇠스랑, 곡괭이로 지평마을 친구들과 함께 밭을 갈았습니다. 각자 이랑을 정하고 심고 싶었던 것들을 심었습니다.


저도 제가 책임질 밭이랑들을 그늘진 곳, 양지바른 곳으로 나누어 이랑의 환경에 따라 작물들을 심었습니다. 봄배추, 열무, 바질, 아욱, 상추, 쑥갓, 깻잎, 파, 곰취, 취나물, 부추, 토란, 생강, 오이, 가지, 토마토, 옥수수, 단호박, 조롱박, 해바라기, 감자, 고구마, 고추, 김장배추, 마늘…. 열거해보니 꽤 많은 생명들과 만나왔네요. 모두 잘 자라줬습니다.

처음 씨를 뿌리고는 풀 속에 내가 뿌린 씨앗의 싹을 못 알아볼까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습니다. 내가 못 알아볼 수 없게끔 다른 풀들과는 확연히 다른 싹이 빼꼼 내밀어 제 얼굴을 봤을 때,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두 달 가까이 싹이 나지 않아 포기하고 다른 씨앗을 넣으려고 했던 곳에서 부추 세 개와 파 다섯 개의 싹들이 실낱같이 자라있는 것을 봤을 때 그 놀라움과 대견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벌레들 속에 씩씩하게 잘 자라준 봄배추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고, 풍성한 잎채소들로 인해 마을 친구들과 몇 번의 마당잔치(?)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원 없이 오이피클, 고추피클을 담아 먹기도 하고, 마을 아이들과 방과후 보육시간에 함께 감자, 고구마를 캐는 즐거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제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텃밭 여기저기에 호박이 넝쿨째 자라 다양한 호박요리를 하기도 하고, 무한한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쇠뜨기로 엑기스를 담기도 하고, 보리수열매가 풍성히 열려 엑기스, 잼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봄에 산에 올라가 취나물을 따다 장아찌도 만들고 가을엔 밤, 잣을 주워 구워 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합니다.

물론 생각처럼 다 잘되진 않았습니다. 생강은 너무 깊게 심어 싹이 못 나왔고, 해바라기도 척박한 땅에 심어서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늦봄에 담갔던 김치는 맛이 없어 이렇게 저렇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깻잎 옆에 심었던 바질은 큰 키로 자란 깻잎 옆에서 햇볕을 못보고 사라졌습니다, 고추는 늦장마 이후 탄저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며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 감사한 맘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합니다. 엊그제 심은 마늘이랑에는 마을 이웃에게 얻은 볏짚을 덮어줬고, 이제 김장할 배추가 밭에서 잘 자랐습니다. 지금은 김장배추 중 몇 포기를 내년 봄까지 어떻게 보관해야 씨앗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음 짓는 농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겁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서울 인수마을과 강원 홍천마을, 그리고 횡성마을과 대야미마을에서, 각자 다른 땅이지만 같은 하늘 아래 한몸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마음과 걸어갔던 발걸음을 생각하며 농생활의 기쁨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생활 영성이 왜 필요한지를 후배이지만 선배처럼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 모습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투른 농사지만 작은 것에 함께 놀라고 기뻐한 친구들과 함께이기에 분에 넘치는 은총을 누리며 땅이 주는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지평마을 식구들이 다함께 '가을걷이 한몸잔치'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길러왔던 농작물과 이곳 양평에서 자란 수확물들로 음식을 함께 만들어 풍성히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틈틈이 연습한 춤과 노래로 공연도 하며 마음 깊이 감사와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참 감사함이 많은 한해였네요. 함께하는 생명들과 하늘, 땅, 비, 바람, 햇살, 벌레 등이 많이 도와줘서 제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남은선 | 따스한 봄날 양평으로 귀촌해 농사짓고 옷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요. 생동중 학부모이자, 삼일학림 학생이기도 합니다.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