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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시골버스 안에서 꿈꾸는 세상
가능성의 땅에서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로 북적북적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짐을 싼다. 강원도 홍천 효제곡마을로 가기 위해이다. 나는 올해 3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왜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지 궁금해한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황금 같은 주말을 왜 그런 시골에서 보내느냐는 거다.

2년 전 여름 처음 효제곡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2주간 건축일과 농사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강원도 한 농촌마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며 주소지를 먼저 강원도 홍천 서석면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출퇴근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세무공무원이 되어 인근에 있는 세무서에서 직장인으로 살면서, 농촌마을에 뿌리내려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도전을 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에는 성공을 했는데, 발령을 경기도 이천으로 받았다.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지만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홍천으로 향했다.

모든 피로를 가시게 해주는 대자연의 힘

이천에서 첫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 내려, 홍천 서석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탄다. 대략 세 시간의 여행 끝에 버스에서 내려 하천 옆 둑길을 삼십 분간 걸어 들어가는 동안 내 자신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병풍 같은 산들로 둘러싸인 논과 밭, 그리고 마을을 구경하며 폭신한 풀밭을 걷다보면 어느덧 나는 농민이 되고, 흙집 기술자가 되고,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다. 소나무숲을 지나 우리 마을에 들어서면 생동중학교 친구들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나처럼 주말이면 도시를 떠나 효제곡마을로 오는 직장인 형, 누나들이 있다.

다들 주중에 바쁜 직장생활로 지쳐 있을 법한데도 그런 기운은 찾을 수 없다. 밭에 심은 고구마와 학교 친구들이 한 주가 다르게 자라나는 생명의 신비가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드나보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돌아온 아이들은 키가 쑥 커 있다. 중학교 친구들은 이제 마을 이모, 삼촌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친구도 있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아이들은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체력과 기술 그리고 옆 친구들과 함께하는 능력이 놀랄 만큼 자라 있었다. 그렇게 늘 달라지는 청소년들과 함께 뛰놀며, 호흡하고 있으면 나도 그네들처럼 몸과 마음이 새롭게 자라난다. 나이 서른에 아직도 자라고 있다고 말하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줄 안다. 하지만 나는 몸도 아이들처럼 새로워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마을에서 즐겨 찾는 공간은 학교 서당이다. 주중에는 그곳에서 아이들이 주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 서당은 흙과 나무와 돌로 만든 집이다. 작년 가을 겨울 동안 생태건축 ‘흙손’ 형들과 함께 만들었다. 살면서 망치질, 톱질을 거의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어려운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렇게 땀 흘려 만든 공간이어서 그런지 더 깊은 애정이 간다. 서당 구들에 불을 지피고 누워 있으면 잠자리가 예민한 편임에도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한주간의 피곤과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시골을 꿈꾸며

홍천으로 오가는 시골버스는 서울의 지하철과는 달리 한적하다. 그리고 대부분 머리가 센 어르신들이다. 나 같은 젊은 사람을 버스 안에서 마주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버스를 타고 오갈 적마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골버스 광경을 꿈꾼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농촌마을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친구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공무원연수원에 있을 때, 내가 강원도 홍천 근처 세무서로 가고 싶다고 하니 선배들이 거기는 직장에서 사고치고 가는 유배지라고 비웃었다. 도시를 배경으로 지내는 직장인들은 생계를 위해 차마 때려치우지 못하고 하루하루 버텨서 승진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꿈이 없다. 곁에 있는 직장동료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주식이 오르는 것이다. 거대한 구조 속에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직장인이 자기 일상에서 창조적인 꿈을 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대자연의 생기 속에서 벗들과 함께 땀 흘리고 웃고 뛰노는 시간들은,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도심 속 일터에 영혼을 불어넣을 용기와 상상력을 나에게 공급해준다.

다음 주말에는 유배지가 아닌 새로운 생명과 가능성의 땅인 강원도 시골버스 안에서 당신을 만나면 좋겠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향하는 직장인들로 농촌마을은 새로운 생기를 얻고, 도시 속 일터는 농촌마을에 뿌리내리고 있는 직장인들로 생명력이 꿈틀대는 세상을 그려본다.

권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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