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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 개척하며 남긴 방대한 기록 추적하다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 지식의 역사'는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에서 신학, 교회사, 철학, 한국근현대사, 정치경제학, 동양고전 등을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함께 쓴 공동논문이다. 강원 홍천으로 귀촌한 사람 뿐 아니라 다양한 대학원생, 직장인, 공무원,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 초안을 완성한 이후 토론과 수정작업을 거쳐 9월 200여명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발표를 했다. 공동논문에 참여한 이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 공동논문에 함께 참여한 각 사람들의 소개를 해달라.

권상원 주중에는 경기도 이천세무서에서 일하며 도시 속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홍천마을에서 비혼형제들과 공동체생활을 합니다. 연구를 함께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김나경 직장에서 디지털콘텐츠 관련 업무를 하면서 주말에는 홍천에 가서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주말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10개월 넘게 바쁜 일정 가운데 많은 양의 글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써야 했지만, 글을 읽으면서 크게 생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박민수 홍천 생동중학교에서 몸놀이와 사회역사 과목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생기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주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에서 수년 동안 꾸준히 공부해온 사람들과 역사를 연구하며 신이 났습니다.

정인곤 이 시대 청년대학생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며,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20대 초반부터 마을사람들의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공동체의 역사, 희망과 대안의 역사를 쓰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귀농귀촌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관점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형성해온 지식의 역사를 비교한 게 흥미롭다. 비교 대상으로 국가와 공동체를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박민수 보통 비교의 대상을 삼을 때, 국가와 다른 국가를 비교합니다. 분석 단위 상 그게 자연스러워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그 국가 안에 있는 한 공동체를 비교한 것은 한 조직이 만드는 '지식' 형성과정과 그 지식의 내용, 그리고 패러다임을 본다면 두 조직을 보는 것이 충분히 유의미하고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는 데 가장 국가 패러다임'적'인 방식을 따르는 조직은 국가 그 자체일 것입니다. 국가뿐 아니라 무수한 민간단체, NGO, 심지어는 국가적인 것과 구별되는 지향을 가진 단체들도 국가 패러다임 안에 포섭될 수 있습니다. 뚜렷한 철학과 가치, 자립할 수 있는 토대와 그것을 담지한 자각된 주체가 없으면, 반국가적 패러다임을 지향하지만, 실제는 반대로 국가 패러다임 속에 갇힐 수 있습니다.
특히 도시문명을 지탱해온 국가가 귀농귀촌이라는 흐름에 주목했지만, 그 정책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주의'와 '행정편의주의' 논리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와 관련된 지식을 만들어내는 곳이 국가입니다. 귀농귀촌 정책을 실시하는 국가 패러다임을 분석하고, 그 국가 패러다임에 대해 철저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른 길을 만들어온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길'과 '패러다임'을 보여준다면, 이후 귀농귀촌을 주제로 한 다른 단체들의 진정성과 역량, 방향 등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서 '기원'을 찾아들어가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분석이란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경우 IMF 때 실업문제 해결방안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전히 귀농귀촌이라는 주제를 도시와 현재 산업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도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귀농 관련 지식의 역사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결혼임신출산육아'라는 주제로부터 출발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걸어온 길 가운데, 현재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 가치, 지식, 실천은 농생활입니다. 그 농생활의 '기원'이 임신출산이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르게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임신출산 과정은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근원적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농農'에 토대를 둔 '생활'이란 생명과 생명이 '평화'의 교감과 관계를 이루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 '아름다운마을생활' 인터넷카페에 10년 동안 올라온 게시글 5000개를 따라가며 읽고 분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권상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남성이기에 임신출산이야기 게시판에 있는 글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는데,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그 때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을 수없이 듣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지식권력에 의지한 채, 비주체적으로 임신출산의 과정을 겪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공부와 수련 그리고 관계를 통해 임신출산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이후 첫 출산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출산 직전 상황으로 의사의 판단에 내어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의 변화를 판단하고 역아의 상황을 태아와 교감을 통해 극복하고 순산한 체험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인곤 2009년 단식수련을 했고 놀라운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단식·생채식에 대한 1000여 개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저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당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식·생채식 이전에 공동체 생활영성의 근원적 경험이 임신출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프로그램화된 것, 양적인 것에만 관심이 쏠려 일상적이며 음적인 것을 보지 못했던 저는 역사를 생명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단식·생채식 수련 중에 명현반응을 겪습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과정에서 아프고 편향된 부분이 표출되는 경우이지요. 참여자 사례를 읽으면서 '명현반응'과 '부작용'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어요. 단식·생채식 수련 과정에서 주체성이 고양되면서 경험하는 것이 명현이라면, 주체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겪는 게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식·생채식 수련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입니다.

김나경 홍천으로 공동체 귀촌하던 2010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3년 치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홍천으로 간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면서 정성스레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새로운 생활을 몸으로 부딪혀가는 나날 가운데 적지 않은 피로감이 있었을 텐데 부지런하게 정리하고 나누어준 것이지요.
홍천에서는 몸에 맞게 최소한의 농사를 지으면서도 산과 들에서 절로 나는 풀과 나물을 채취해서 밥상에 들이고자 노력합니다. "김매기하거나 길을 오갈 때에도 터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풀들을 살피기도 하고, 먹을 수 있는 풀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찾기도 했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터전 밭, 샘물 근처, 마을 입구 소나무숲 아래, 산 초입" 등 늘상 다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며 생명이 자라는 곳으로 인지해내는 것이지요.

- 이후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김나경 각자가 자기의 삶 가운데 지식을 생성해가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식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지식의 형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이번 작업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각자 자신의 과제, 주제를 안고 계속해서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박민수 오랜동안 국가가 펼쳐왔던 다양한 농촌농업 정책, 주요 정책들과의 연관 속에서 귀농귀촌 정책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고, 아름다운마을밥상이나 홍천밥상 등 그동안 공동체가 축적해온 방대한 '지식'의 역사를 주제별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은 꿈이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사회과학·역사 관련 연구소를 만드는 겁니다. 이 시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는 조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정인곤 사건을 통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문제의식이 신념화되는 과정이 새로운 지식의 주체가 세워지는 과정입니다. 신념화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 새로운 삶의 양식이 만들어집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공동체 지식의 주체로 세워져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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