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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현재화하는 삶

인생 전체를 걸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여 희망을 현재 삶으로 이루어가는 이들이 있다. 예수사건으로 모이게 된 초기 교회공동체가 그러했고, 구한말 조선 500년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복음을 받아들여 새로운 자치 공동체를 일구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지금 급격한 몰락과 도덕적 가치 상실의 위기에 놓인 한국기독교가 거듭나려면 어떤 토대를 복원해야 할까? '희망을 현재화하는 성령의 은총, 근원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7월 15∼17일 2013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가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땅에서 일어난 주체적 자각과 창조의 영성,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들을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오세택(두레교회), 이영재(전주화평교회), 최철호(아름다운마을공동체) 목사의 토론으로 살펴봤다.


최철호 교회개혁운동의 담론은 교회가 돌아갈 근원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생명력을 경험한 그 시기의 전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교회사 전체 흐름 속에서 초대성령공동체는 마치 박물관 유물처럼 치부되고, 너무 쉽게 망각되고 배제되는 것 같습니다.
망국의 현실 앞에 조선 500년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거쳐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인 분들의 주체적 자각이 창조적 사상과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통전적 영성이 한국교회에서 급격히 사라져버린 게 위기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주체적 자각과 창조적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한국근현대사는 동서 문화의 만남으로 전개된 창조적, 역동적 역사였습니다. 동서 문화가 만나 정신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그 맥락에서 씨알사상이 나왔지요. 실학, 개화파, 동학, 독립협회, 만민공동회까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각시켜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구도자적 과정이 한국근현대사였습니다. 그 맥락에서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선생이 나왔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를 조직해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우는 교육입국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이승훈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오산학교를 설립했는데 섬기는 지도력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유영모 선생은 이승훈 선생의 교육입국운동을 이어 살면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 '나'의 뿌리를 파고듭니다. 본인이 동양문명의 뼈에 서양문명의 골수를 넣으며 살았다 하셨지요.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유영모를 선생님으로 만났고 십자가 신앙을 고난 받는 민족의 역사에 적용했지요. 이분들이 씨알사상을 만들었습니다. 씨알사상은 나를 창조하고, 나와 너의 관계를 창조하고, 전체가 하나 되게 하는 주체적 사상입니다.

저는 70년대 초반, 대학 4학년 때부터 함석헌 선생을 따랐습니다. 민주화운동 선봉에 서신 스승들 언저리에 있다 보니까 저도 학생운동으로 3년 감옥에서 살면서 바닥공부를 했지요.


오세택 김용기 장로는 일제 수탈로 인한 농촌과 농민의 피폐한 삶을 직시하면서 경기도 봉안에서 17년 동안 이상촌(마을공동체)운동을 펼쳤습니다. 해방 뒤 다시 '삼각산농장'을 세웠고, 한국전쟁 와중에는 27명의 동기와 함께 ‘에덴향’을 개척합니다. 버려진 땅을 일구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옥토로 만들고 나면,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다시 버려진 땅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리더십의 갈등문제를 겪고 에덴향을 떠난 실패 경험으로 공동체를 이뤄가는 대신 1954년 경기도 광주의 황무지 1만 평에 가나안교회를 설립하고 교회 중심의 느슨한 협의체로 전환합니다. 신앙에 바탕을 둔 농촌, 농민교육이야말로 민족의 주권회복이라고 생각해온 김용기 장로는, 53세인 1962년 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하여 기독교 농촌지도자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문하면서 새마을운동 태동에 깊이 관여되기도 합니다. 김용기 장로는 처음에는 새마을운동을 긍정적으로 보셨지만, '새마음'이 더 중요하다면서 군사정부의 새마을운동이 급격히 산업화되는 모습에 비판적이었습니다. 1988년 김용기 장로가 떠나시면서 가나안농군학교는 가족주의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가나안의 교육이념인 자기비움과 희생정신이 구체화되지 못한 점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영재 대천덕 신부는 한국에 들어와서 성공회 소속으로 있다가 강원 태백으로 정하고 예수원을 설립했습니다. 하나님나라로 가는 길은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라며 토지사유를 반대하시고 희년의 가치를 담은 토지정의를 주창하시고 일생 기도하셨습니다.


동광원 수도공동체 영성의 토대가 된 이현필 선생은 예수의 뜻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수도하셨고, 말씀을 실천하는 데 삶을 바쳤습니다. 기도하고 수도하고 고아들, 병자들 보살피면서 본인은 육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52세에 결핵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제자들과 동냥, 탁발하면서 고통당하는 이웃을 섬기면서 사셨습니다.

선생은 아주 철저한 수도를 하다가 아주 가벼운 몸으로 행복한 환호를 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엄격한 채식을 지켰는데,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삶의 규율을 파계해버리셨어요. 이현필이라는 존재를 추대, 숭배하는 것을 경계하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스스로 파계, 범죄하시고 돌아가신 겁니다. 제자들이 나는 누구 제자다 하면서 스승의 허명에 기대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격려, 경고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최철호 교육입국운동과 신앙에 토대한 마을공동체운동은, 당시 일제 통치를 받고 있지만, 통치를 거부하고 자치에 근거한 공동체를, 해방 이후가 아니라 지금 일제 현실에서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해방을 현재화하는 것이지요. 일제시대에 마을공동체운동을 시작했던 김용기 장로는 에덴향 실패 이후 깊이 있는 공동체적 사귐이 어렵겠다고 판단하셨는데, 예기치 않게 가나안농군학교가 활성화되면서 최초의 소명을 놓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오세택 김용기 장로는 에덴향 실패 후 느슨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강원도로 갔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려 했는데, 막사이상까지 받고 소문이 너무 났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약화되고 가나안농군학교에 집중한 것 같아요. 치솟는 인기를 내려놓고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장로님을 뵙고 그 영향 때문에 복민주의(형제애적 가치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되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섬긴다)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되고 공동체 영성을 실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교회 목회현장에서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한 팀이 홍천마을에서 배우려고 가 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배운 게 지역교회에서 실현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철호 지금 두레교회 청년들이 공동체에 대한 꿈을 품고 목사님과 조율하고 교회 전체 차원의 비전으로 모색해가고 있어, 좋은 모델이 되겠다 생각합니다. 기독교세계관 논의가 추상적, 원론적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데 비해, 김용기 장로는 기독교세계관을 '농(農)'이라는 구체적, 대안적 가치를 갖고 전개하셨습니다. 또한 배우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조와 정절을 가지고 지켜갈 수 있는 수도적 영성이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조선시대의 붕괴 현실 앞에서 선각자들이 희망을 예수 신앙에서 찾았다면, 지금 기독교의 급격한 몰락과 도덕적 가치 상실의 현실에서는 이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지혜, 영감, 창조성이 우리에게서 복원되어야 하고, 그 접점에 '농'과 '수도적 삶'이 매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영재 농(農)은 노래 곡(曲)에 별 진(辰)입니다. 별들의 움직임, 창조 질서에 따라 부르는 노래, 창조의 하나님 숨결 따라 사는 것이 농의 삶이지요. 그런데 성경 창세기에 죄를 지은 자가 농사짓는 자였더라고 나와요. 흙을 잘못 다룬 거예요.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흙을 살리면서 올라온 채소를 먹어야 한다, 흙을 죽이고 올라온 채소는 사람도 죽인다 합니다. 그런데 흙을 살리면서 올라온 채소가 있느냐, 없다고 보는 거예요. 농의 핵심은 '어떻게 흙을 살리는 일에 종사할까'입니다. 지금은 농사가 도시 종속형이 되어서 도시사람들 먹을 걸 생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습니다. 타락한 농입니다. 교회는 그런 농과 절연하고 다시 살리는 농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농촌에서 해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생활 속에서 수도하면서 자력갱생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에 도전할 수 있지요.


유영모, 함석헌, 이현필, 김용기 생전에 깊이 교류하고 영적 교감을 나눈 분들이었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기억에선 잊히거나 파편화되어 있다. 신앙의 선배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조명한 이 자리를 계기로, 통전적 영성을 닮아 진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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