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C 아픔 뚫고 흘러온 희망 물줄기
생명평화 꿈 잇는 만남으로


풀무원 만드신 원경선 선생님이 아흔 넘었을 때, 집으로 찾아 오셨다. 어떤 모임에서 밝은누리 얘기 듣고, 괴산 평화원에서 아침 일찍 오신 거다. 첫 만남인데, 현미밥 맛있게 잘 지었다 칭찬하시고는 진지한 대화를 이끄셨다. 일제와 전쟁, 분단 아픔 속에서 품었던 꿈, 더불어 사는 삶과 평화를 말씀하셨다. 밝은누리 삶과 꿈을 묻고, 격려하셨다. 못 다한 생명평화의 꿈을 잇는 만남이었다.

몇 년 전 문동환 목사님이 오셨다. 아흔 되셨을 때다. 역시 첫 만남인데, 진지한 얘기가 이어졌다. 삼일학림 여는 잔치 때도 와서 축복해 주셨다. 어린아이처럼 말씀하신다. “여보, 여기 좋지 않소. 우리 여기서 살까!” 일제 식민지 백성의 희망을 키우던 만주 명동마을 어린이와 밝은누리 젊은이들의 만남은 서로를 새 희망으로 가슴 벅차게 한다.

민주화운동 어른이신 박형규 목사님도 아흔 넘어 오셨다. 전에 한번 뵌 적 있다. 사순절 금식기도 모임에서 밝은누리를 소개하고 얘기 나눴는데,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교회야”하며, 반가워하셨다. 아드님 부축 받으며 먼 길 마다 않고 와서, 살아오신 삶과 꿈을 나누셨다. 삼일학림 여는 잔치 때는 멋진 우리 춤으로 흥을 더해 주셨다.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생명평화의 춤이다. 오랫동안 마음이 울린다. 우리 삶을 보고, 모두 “고맙소”라고 인사하셨다. 처음 만난 이들을 남으로 보지 않고, 같은 뜻을 잇는 동지로 대하셨다. 모두 아흔 넘으신 때였는데, 계속 꿈을 꾸고, 우리 꿈을 궁금해 하셨다. 성령 받으면 꿈으로 산다. 아흔 넘어 불편한 몸이지만, 함께 꾸는 꿈 찾아 가볍게 사셨다.

지난 한가위, 강원도 산골에서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이 땅 곳곳, 먼 나라 영국에서도 와서 풍성한 평화를 나눴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어울림 잔치로 놀았다. 풍물은 언제나 흥겹고 신난다. 밴드공연은 환락과 신명의 경계를 넘나든다. 돈 주고 보는 잔치가 아니다. 정성껏 준비해 함께 펼치는 마당이다. 함께 사는 삶을 담은 창작곡이 많다. 절도 있는 기합과 격파가 이어지는 데, 다들 엄청 웃는다. 창도 하고, 단소, 피아노, 기타와 만돌린 등 다양한 장기를 펼친다. “그동안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살았니!” 생명은 이래저래 참 놀랍다.

동학과 화이트헤드 철학을 공부하고, 세계 곳곳에서 새 문명을 일구는 삶을 둘러본다. 명동마을과 명동학교, 용동마을과 오산학교, 가나안 이상촌과 농군학교, 동광원과 디아코니아자매회, 예수원의 영성과 삶을 돌아본다. 20세기 역사의 아픔을 뚫고 흘러온 희망의 물줄기다. 함께 품은 뜻을 더불어 사는 삶으로 펼치고, 삶을 토대로 가르치고 배운다. 노동과 기도, 역사와 철학수신이 하나 된 삶이다. 삶터, 마을에서 솟아난 샘물이 분단 갈등을 치유하는 물결이 된다. 한라에서 백두 넘어 온 누리 굽이쳐 흐르는 신명나는 생명평화 잔치를 가슴에 품는다.

최철호 | 밝은누리 대표

(이 글은 <한겨레> ‘휴심정’에 연재되는 기사로, 본지에도 같이 연재합니다.)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