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한 이야기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희망이 보이는 자리>를 읽고
지난 8월 7일 달날,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추모식과 그가 쓴 책 《희망이 보이는 자리》 출간기념회가 인수동 마을찻집 마주이야기에서 열렸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3세대 지도자로 이날 모임을 위해 미국과 영국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마크, 벳지, 충연, 아이린 씨가 왔고,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알림을 보고 마주이야기에 모였다. 지은이의 또 다른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에 추천사를 쓴 서광선 교수가 용서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용서에 대해 고인이 대학에서 강연한 영상을 함께 보았다. 고인의 이야기가 이날 많이 나눠지지는 않았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온 네 사람의 따뜻한 얼굴과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밝은 사랑이 느껴진 자리였다. 모든 순서가 끝난 후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도 기억에 남는다. 《희망이 보이는 자리》는 지은이가 2016년에 개정한, 생전의 마지막 책으로 고통, 사랑, 희망에 대한 글 모음집이다.
환경은 언제나 변하지는 않으며, 아무리 우리가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다. … 세상을 바꾸는 데 헛된 노력을 쏟는 대신, 우리 자신이 그 변화에서 원하는 바대로 변화해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변화해 나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올까? 《희망이 보이는 자리》를 읽으며 ‘사랑’과 ‘변화’가 생각났다. ‘사랑’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말이다. 그리고 심하게 왜곡된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쉽게 쓰지만 본뜻이 파괴된 탓이다. 지은이는 2차 대전과 파시즘, 해외 망명이라는 어려움을 통과한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희망이 보이는 자리》는 주로 지은이가 직접 만난 인물들이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힘겹게 통과하는 모습을 그렸다. 어쩔 수 없는 운명, 어려움을 주는 관계를 피하지 않고 맞서서 변화해 간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
‘죽는다’는 것, 완전히 변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선함을 버리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 … 정작 문제의 핵심에 이르면 우리 대부분은 옛 모습에 집착하거나 최소한 자신의 선한 부분이라도 보존하려고 애쓴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해체되려면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니…. 잘하는 것, 장점을 부추기고 극대화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지은이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임을 알려준다. 왜곡되었으나 그 참뜻을 오늘 되살려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힘이 있다. 고인이 경험한 사랑이, 내 삶에서, 이웃의 삶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기도한다.
김준표 | 배운 재주를 어떻게 함께 누리도록 풀어낼까 생각하는 직장인 마을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