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서 형아 냄새가 나"
형누나 입던 옷 물려받고 으쓱해지는 옷 잔치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계절이 들어서는 시기에는 마을 아이들 옷 꾸러미들이 어린이집으로 속속 모입니다. 집집마다 장롱을 정리하면서 안 입게 된 아이들 옷이지요. 한 해 사이 훌쩍 자라 옷이 금세 작아지니 동생들에게 물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아름다운마을 어린이집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맞춰 집집에서 모인 옷들로 옷 잔치를 연답니다.
해마다 철마다 옷 잔치를 해왔으니, 우리 아이들도 옷 잔치를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평소 언니나 오빠가 입고 온 옷이 마음에 들면, "언니, 그 옷 작아지면 나 줘~" 하고 먼저 살짝 찜해놓기도 한답니다. 어린이집 한쪽에 하루하루 옷 꾸러미가 쌓일수록 아이들은 언제 옷 잔치를 할지 점점 더 기다리고, 드디어 다같이 둘러앉아 옷을 나누는 잔칫날! 옷들 사이로 아이들의 눈빛도 이리저리 오고갑니다.
이 옷 임자를 찾아라
옷이 나올 때마다 "저 입고 싶어요!" 하고 손을 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요. 같은 옷에 여러 친구들 마음이 동해서 가위바위보로 옷의 임자를 찾기도 합니다. 선생님도 옷을 고른 친구한테 그 옷이 맞을지 안 맞을지 대보기도 하고, 눈으로 가늠이 어려우면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직접 입어보기도 하지요. 옷이 꼭 맞으면 벗기 싫어져서 그대로 입고서는 즐거운 표정이 내내 떠나질 않는답니다.
동생이 받아간 옷이, 자기에게 익숙한 옷인 걸 발견하면, "그 옷 내가 아주 아끼던 건데…" 하며 아쉬워하는 마음과 소중히 입어줄 것을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하지요. 옷을 받고는 "옷에서 형아 냄새가 나" 하고 형아를 보면서 옷을 꼭 끌어안고 좋아하는 친구도 있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나누는 옷 잔치 속에는 마을 형님들의 향기가 있고, 옷 속에 담긴 이야기가 있어서 더 소중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은 더 정겹고 더 으쓱한 마음으로 옷을 입게 되지요. 선생님들도 "아, 이 옷, ○○가 입었던 옷인데, ○○가 입으니까 또 다른 느낌이네." "예전에 ○○도 입었었어." "그렇게 오래된 옷이야? 와~" 하며 옷의 깊은 역사를 얘기하며 평범하게 보였던 옷을 더 사랑스럽게 보게 되지요.
함께 자라는 좋은 기운도 이어받죠
누군가 입다가 준 헌 옷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옷 잔치에서 선물 받은 '새 옷'입니다. 옷 잔치는 언제 형님만큼 클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아이들이 쑥쑥 자라가고 있다고 서로 확인해주는 자리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옷만 물려받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좋은 기운도 이어받고 있겠지요. 내 것을 또 아우들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면 더 잘 입을 수도 있지요.
요즘은 많은 것이 풍요롭고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바로 사고, 필요 없어지면 쉽게 버릴 수 있지요.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필요 이상의 것들을 만들어내고 버리고 있습니다. 옷을 물려주고 물려받음으로 가볍게 버리지 않아서 좋고, 입으면 입을수록 옷에 있던 화학물질들이 날아가니 일석삼조나 되는 셈입니다.
아이들과 옷 잔치를 하면서도, 옷이 너무 많이 모이면 억지로 다 나누지 않습니다. 내 것을 내 안으로 쌓아두지 않고 두루 나누려는 옷 잔치를 통해 또다시 많은 옷이 우리 안에 쌓이지 않도록 알맞게 나누고 남는 것은 또 다른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요. 옷 잔치를 하고 나서 새 옷을 입은 동생들을 마을 이곳저곳에서 만나는 형님들은 "어? 내 옷 입었네!" 하고 좋아합니다. 새로운 옷 주인을 만난 옷들은 또 재미난 이야기가 덧입혀지겠지요!
이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