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리 삶의 창조적 모험으로
학창시절 입시공부에 매여 무료하게 학교 다닐 때, 문학책을 읽으며 그나마 위로를 받았다. 문학은 내게, 어두운 현실 너머 진리의 세상이 있다고 은밀히 속삭이며, 내가 발 딛는 곳 너머 다른 세상을 동경하도록 부추겼다. 돌아보면, 그 시절, 문학으로 큰 힘과 위로를 얻은 건 분명하나,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았다. 역사를 등한시하고 문학에 심취하면서 내 기질에 어그러진 감정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그로 인해 어떻게 삶이 왜곡되었는지도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지금 중학교 아이들과 문학수업을 하고, 문학을 통해 새롭게 눈을 떠가고 있다.
처음에는 문학의 범주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어떤 게 좋은 작품이고, 아이들과 나눌 가치가 있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공교육처럼 교과서가 주어지는 게 아니니, 나름 체계를 만들고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어떤 작품이어야 하냐에 매이다 보니, 본래 문학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문학수업을 하게 되었던 듯싶다.
문학은 사람들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접하며 삶의 기로에서 어떤 곡절을 겪는지, 그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시련에 부딪히는지, 또 숱한 삶의 인연 끝에 무엇을 깨닫는지 성찰의 계기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 안에 인생길이 제 아무리 다채롭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 간에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가운데 비춰지는 식의주 생활에서 많은 삶의 문제들이 비롯되는 게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아플 때 어떻게 하는지, 궁핍한 시절이 찾아오면 어떻게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지, 점차 식의주를 둘러싼 노동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문명화된 삶의 양식이 생명들의 관계를 얼마나 까다롭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교육이란 모두 인생의 직접경험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고,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필요한 사려와 적절한 행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문학을 읽는 건, 현실 너머 다른 세계를 동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삶이 '식의주'를 근간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감촉하고, 당면과제의 해결을 모색해가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함이다.
그러고 보니, 홍천에 와서 무엇으로 밥상을 차릴지, 어떤 집에서 잠을 잘지, 난방은 어떻게 해결하며,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며 놀 건지, 일상의 자잘한 사건과 소소한 일들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문명의 이기로 인한 이기심과 탐욕, 자연의 파괴, 관계의 단절 속에 삶을 회복하기 위해 근원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을 직시하고 어떻게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게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삶의 양식은, 프로그램이나 정형화된 틀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며 근기 있게 하는 공부의 과정, 용기 있게 모험하는 생활의 작은 변화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마음에 새겼다.
문학세계에서 파란만장한 삶의 전개가 내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 세계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발 딛는 땅의 현실, 자본의 힘을 주도면밀하게 통찰해내며, 부지런히 새로운 삶의 양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문학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공간 속에서도 현재라는 유동적 성질을 감각해낼 수 있다면, 아이들과 창조적 대화를 이끌어가고, 창조적 삶의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교육의 목적>을 쓴 화이트헤드는 많은 학습이 '과학과 문학 사이'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이과냐, 문과냐로 구분 지으며, 분절된 학습과 분절된 삶의 극단을 달리는 현대 교육과정은 모든 생명의 활력을 죽인다. 서로 다른 과목들의 상관관계성을 보여주는 노력을 통해서 생명과 경험의 통일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문학이 삶을 예견할 수 있는 지혜를 머금고 있다면, 예견한 삶을 실현으로 이끄는 건 기술 교육이다. 무엇이고 이해하고 싶다면 만들어보라는 가르침. 어디까지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도전해볼 수 있는 힘을 배워가는 것이다.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는 기술 교육이 동반될 때 문학이 관념적 세계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과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오래 전에 목격한 삶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옭아매는 삶의 문제가 되고 있음을 적잖이 보게 된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의 힘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간절한 일인지, 살 떨리는 일인지도 가늠해본다.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날마다 서로를 변화시켜주는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삶을 길어 올릴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해진다.
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