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쿰한 냄새도 곧 익숙해지겠지
메주 띄운 날, 콩 털기부터 매달기까지
별채에 떡하니 자리 잡은 메주. 쿰쿰한 냄새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메주 쑤는 법을 알려주신 김영옥 할머니께서 잘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아직 콩을 갈무리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예부터 음력 섣달은 ‘썩은 달’이라 메주를 안 만들었다며 얼른 만들라신다. 원정여 할머니도 12월 안에 하라며 메주는 쒀본 적 있는지 물어보신다. 처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를 불러, 갈켜줄게" 하신다. 떡 메치기를 가르쳐주신다더니, 지난번 마을잔치 때 정말 하나하나 도와주셨던 할머니. 할머니 마음이 전해져 미소가 번진다.
그래, 동짓달을 넘기지 말자! 부랴부랴 서둘러 콩 털기 마무리에 돌입! 11월부터 시작했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콩 털기. 처음엔 두드려서 털면 키질하고 고르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손으로 일일이 깠다. 그랬더니 수북이 쌓인 콩대 더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막대기로 콩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처 털리지 않은 콩이 남았는지 콩대를 확인하며 1차 분리. 그리고 콩과 검불(콩깍지, 마른 잎, 줄기)이 뒤섞인 더미에서 2차 분리. 체에 쳐서 티끌과 먼지를 거르고 키질하고, 마지막 콩 선별 작업까지!
두 달이 걸렸다. 나름 갈무리에 강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점점 못하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콩을 고르는 밤이면, 평소 들여다보지도 않던 책이 어찌나 읽고 싶던지…. 요령이 없는 건가 싶다가도 꾀를 부릴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마다 홍천에 와서 틈틈이 콩을 골라준 이들의 손이 없었다면 뒷심이 급격히 떨어졌던 때를 이겨내지 못했을 거다.
어느새 붉게 변한 메주콩. 밤처럼 부드럽고 달달해서 계속 집어먹게 된다.
이듬해 씨로 쓸 것부터 남기고, 쭈글쭈글한 콩을 골라내니 모두 15.8kg, 두 말 정도다. 드디어 오늘, 메주콩을 삶았다. 해뜨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두 겹 양말 위에 껴 신은 털버선이 무색할 만큼 추위가 매서웠다. 깨끗하게 씻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물을 채우는데, 가마솥과 화덕 주변에 흐른 물이 곧장 얼어버렸다. 그래도 뒷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샘물이 이 추위에 얼지 않고 시원하게 나와주니 무척 반갑고 고맙다.
'흙손'에서 만들어준 가마솥 화덕에 불을 지폈다. 효율을 높인 화덕이라 나무는 적게 들지만 아궁이 크기가 작아서 수시로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자주 들여다봤는데도 다른 일에 잠깐 눈 돌린 사이 콩물이 끓어 넘쳤다.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뜸들이듯 콩을 익혀야 하는데 젖은 장작이 마르면서 갑자기 화력이 세지는 바람에 또 한 번 끓어 넘쳤다. 불을 약하게 한답시고 잘 타고 있는 장작을 꺼냈다가 두어 번 불이 꺼져서 다시 지피기도 했다. 가스불 조절하듯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온갖 난리통 속에서 메주콩이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절구 대신 선택한 차선책, 물장화. 자루에 담아서 밟았으면 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오전 7시 반쯤 불을 지폈는데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다 되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콩이 으스러진다. 본격적으로 만들 때다. 물장화를 신고 뜨끈뜨끈한 걸 밟고 으깨니 내내 얼어있던 발이 후끈후끈 녹는다. 계속 밟다보면 절로 으깨지려니 했는데 가볍고 날렵한 물장화가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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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틀 대신 작은 반찬통에 면보를 깔고 으깬 것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고는 면보를 잡아당겨서 메주를 꺼내고 손으로 다듬었다. 이렇게 만든 메주는 모두 16장. 물 양이 조금 많았나보다. 콩 삶은 물도 조금 남았는데, 진한 갈색에 몽글몽글 엉겨 붙은 것이 걸쭉하기까지 하다. 화천 시골집 원장님이 메주 삶고 가마솥에 남은 물 퍼서 항아리에 부어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지난해에 짜게 담갔던 간장독에 부어주었다.
이제 잘 띄우는 일이 남았다. 따뜻한 실내에 걸어두기만 해도 절로 뜬다지만 메주가 생활할 별채는 공기가 찬 편이다. 짚으로 엮어 매달아 어느 정도 말린 후 이불을 뒤집어 씌워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살아 있는 녀석이니 매일 말도 걸어주고, 좋은 마음으로 좋은 글도 읽어주면 잘 띄워질 거라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좋은 미생물이 많이 살 수 있게 나도 매일매일 건강한 기운으로 살아야지.
이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