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짚 말리고, 야콘 캐고, 묵나물 만들고
믿음의 열매를 거두는 가을 갈무리
청명한 가을하늘에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요즘이다. 보름 넘게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롭고 낙엽은 바스락거린다. 자주 내리던 무서리가 이제는 된서리가 되어 한기를 느끼게 하는 지금, 배추를 묶고 뿌리채소는 갈무리를 서두르고 묵나물은 더 바싹 말리고 잡곡은 깨끗하게 갈무리해서 알맞게 저장하는 시기다.
볏짚 말리기 / 쓸모없어 보이고 먹을 것도 없는 풀단이지만 꽤 요긴하다. 볏짚으로 쓰지 않는다면 탈곡할 때 잘게 썰어 이듬해 거름이 되도록 한다. 잘 말리면 소와 염소 등 되새김하는 동물들의 겨울먹이가 되고, 건축의 재료가 된다. 배추를 묶을 때, 김장독을 묻거나 메주를 만들 때도 쓴다. 이엉을 엮어 비를 피하는 덮개로도 사용한다. 여러 모로 요긴한 게 볏짚이다. 행여 가을비에 젖다보면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볕 좋을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배와 참마 사이 어디쯤에 있는 맛이 나는 야콘은 된서리 내리기 전에 갈무리한다.
땅속 작물 수확하기 / 땅콩은 쥐나 굼벵이도 좋아하기 때문에 서둘러 갈무리하는 것이 좋다. 배수가 좋은 땅에 심은 것이 깨끗하다. 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잘 말려 저장한다. 질척질척한 곳에 있는 것은 지저분하다. 흙을 잘 털어내야 한다. 고구마처럼 보이는 야콘은 색은 감자색이고 맛은 배와 참마 사이 어디쯤에 있다. 된서리 내리기 전에 갈무리한다. 저장하기 좋고 몸에 좋은 겨울철 간식 겸 약이다. 올해 감자는 유난히 더디고, 김도 잘 매지 못해 기대도 안 했지만 가을감자, 청춘을 수확했다. 울퉁불퉁하니 긴 모양이 특이해도 속이 노랗고 맛은 좋아 위로를 받는다. 남겨둔 하지감자와 자주감자도 여태 싹이 많이 나지 않았다. 몸집도 큼직하니 저장하기도 좋다.
수수는 볕에 일주일동안 걸어놨다가 털었다.
잡곡 갈무리 / 향찰벼는 열흘을 말렸다. 남들은 사나흘을 바짝 말리면 된다던데, 역부족이다. 바닥에 천막을 한 개 깔았더니 습이 생겨, 천막을 두 개로 늘리고 벼를 얇게 말리니 속도가 났다. 망사로 된 거적은 더 빨리 마른다고 하니 깔개를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언제까지 말려야 하는지 몰라 자꾸 나락을 까보는데 멥쌀 같아 보여 벼를 잘못 심었나 하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열흘이 되었는데, 이튿날 큰 비도 온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거두었다. 벼를 바닥에 놓고 보니 제법 흰색이 난다. 자루에 담으려고 하니 풀풀 먼지도 나고 바싹 마른 느낌이 들어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 조는 말리고 몽둥이로 쳐서 낟알을 떨어냈다. 가벼워 키질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검불은 좁쌀을 거르는 가는 체로 거둬내고 키 큰 선풍기로 날리니 껍질가루가 시원하게 날아가고 깨끗한 알맹이가 되었다. 열 평 남짓 심어 닷 되 정도가 나왔다. 수수는 일주일 동안 말린 뒤에 털었다.
고구마줄기와 토란대. 묵나물은 잘 말려야 저장성이 좋아진다.
묵나물 저장하기 / 고춧잎과 고구마줄기, 토란대와 가지, 야콘잎을 말렸다. 고춧잎은 살짝 데치고 찬물에 씻어 잘 펴서 널어야 잘 마르고, 고구마줄기는 질겨서 오래 데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토란대와 가지는 데치지 않고 말린다. 가지는 십자로 갈라 그늘에 말리는 것이 좋다. 야콘잎은 살짝 데쳐 그늘에 말리고 다 마르기 전에 팬에 덖으면 차로 만들 수 있다. 따기도 힘들고 데치거나 말리는 게 쉬운 작업이 아니지만, 잘 말려야 저장성이 좋아진다.
가장 힘든 건 고추다. 잘 마르지도 않고 잘 썩는다. 말린 후 꼭지를 따고 가루로 내야 하니 품이 많이 든다. 묵나물을 만들려면 비가 없는 가을햇살이 최고다. 가을 작물을 캐는 시기와 겹치지 않도록 고추와 고구마 묵나물을 서둘러 말린다면 조금 여유가 생기겠다.
가을에는 추수하느라 바빠도 괜스레가 아니라 당연한 시간들이다. 자급 농사라 직접 캐고 햇빛에 말리고 직접 갈무리하니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간다. 품이 많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털고 말리고 저장한 것은 먹거리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로움이자 믿음의 열매가 아닌가!
조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