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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씨앗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부지런히 땅을 뚫고 얼굴 내미는 새싹들에 "싹 났다!" 하며 외치는 이들의 환호로 온 밭이 들썩거린다. 이 마른 씨앗 어디에서 쉼 없이 잎을 내는 부지런함과 움직임이 나오는 걸까? 이 마른 씨앗 어디에 그 굵고 든든하게 뻗는 줄기가 숨어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질긴 열매 껍질과 색색이 다른 열매 한 알 한 알을 만들어내는 걸까? 한 작물 안에서도 뿌리, 잎, 줄기, 열매, 껍질, 씨앗, 뿌리, 서로 전혀 다른 색과 결의 물질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놀랍고 신비롭다. 옥수수를 심다가 문득 든 물음과 놀라움이, 한 이랑을 다 심을 때까지 계속된다.

제 안에 다 있다. 작은 씨앗 안에 모자람 없이 모두 다 있다. 물론 햇빛, 공기, 물, 흙, 기온…. 다양한 외부의 도움이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것이지만, 한 생명의 고유한 성질과 모양은 그 씨앗 안에 원래 모두 잠재되어 있다. 씨앗을 품어주는 땅과 햇빛과 비를 만나면 생명은 싹을 틔워 쉴 새 없이 자라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씨앗을 심고, 싹이 이제 막 나고, 나오지 않는 싹을 기다리던 때. 5월 초였다. 마른 땅에 내린 비가 땅을 촉촉하게 적셨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밭도,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싹들도, 심겨진 씨앗도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그렇게 내리는 비가 좋아 비를 피하지도 않고, 밭에 앉아 싹들과 함께 즐겁게 비를 맞았다. 이 비를 맞고 이제 막 난 싹들은 쑤욱 클 것이고, 기다리고 있는 싹들도 반가운 싹을 보여주겠지.

내가 밭에 직접 물을 주려면 물조리개를 들고 대 여섯 번은 왔다 갔다 해야 겨우 한 이랑 정도, 그것도 겉흙을 살짝 적시는 정도로밖에 주지 못한다. 이제 막 틔운 싹이 가뭄으로 말라갈 때, 내 마음도 함께 말라가는 듯 애태워본 후에야 온 밭을 촉촉하게 적시며 내리는 비가 온 생명에게 은혜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매일 뜨는 햇빛과 온 누리를 적시는 비, 모든 생명을 품고 기르는 땅의 온전한 은혜 없이는 어떤 생명도 싹틔우고 자라지 못한다.

씨앗에 내재해 있는 100%의 온전한 생명력과 온 우주가 한 생명을 향해 베푸는 100%의 은혜가 만나 생명이 나고 자란다. 그렇게 자라는 다양한 생명들의 함께 함과 서로 도움이 삶을 더 완전하고 풍요롭게 한다. 너와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믿고, 우주와 곁에 있는 친구들의 은혜에 잇대어 사는 삶에 감사하며 소망을 잘 품고 살기를 기도하게 된다. 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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