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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땅에 찾아온 평화의 새들
청년아카데미 겨울 철원평화순례 현장


1월 22일 오전. 각지에서 모인 열다섯 청년들이 백마고지역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틀간 강원 철원지역을 함께 걸었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영하20도 추위보다 더 차가운 남북 대치의 흔적들이었습니다. 곳곳의 군사시설, 철조망에 써있는 지뢰 경고문, 무장한 군인들, 군용차량들이 우리와 마주했습니다. 길가에 북에서 날아온 ‘대남삐라’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철원이 북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되었습니다.

분단 이전의 철원은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조선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고 큰 평야를 이루어 예로부터 쌀농사를 많이 짓던 풍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가 생긴 후로는 그 길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교통 요충지로 발달했습니다. 철원읍내 인구수가 3만 명에 달했을 정도였습니다. 38도선 위쪽에 위치한 철원은 해방 후에는 북쪽 관할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둘로 갈라져 현재는 남쪽과 북쪽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휴전선 철조망이 조선반도를 갈라놓기도 했지만 철원을 갈라놓기도 했던 것입니다.


소이산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철원지역은 물론 북녘의 산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였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산줄기마다 이 땅과 저 땅의 청춘들이 실체도 없는 적개심을 학습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소리 지르며 정상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노동당사가 있던 곳은 예전 번성했던 철원의 구시가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겪으며 마을이 수많은 폭격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노동당사도 수많은 총격과 포탄을 맞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뼈대만 남은 채 지금까지 홀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의 상처가 콘크리트에 차갑고 선명하게 박혀있습니다.


옆으로 조금 이동했더니 옛 철원제일교회의 터가 있었습니다. 1905년 세워진 이 교회는 일제 강점기에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온 기독인들의 울타리였으나, 전쟁을 겪으며 예배당이 폭격을 맞아 무너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현재는 옆에 새 예배당이 말끔하게 건축되어 있었습니다.

얼굴이 칼바람에 베이는 듯 아프고 발가락이 떨어져나갈 것마냥 강추위가 덮쳤습니다. 종종걸음을 하며 숙소로 향했습니다. 분단의 묵직한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말입니다. 숙소에 둘러앉아 떡만두국을 나누고 윷놀이도 하며 그제야 함께한 사람들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기도를 가슴에 안고 철원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습니다.


둘째 날. 동이 트기 전 우리는 숙소 앞에 모여 빠르게 걷기 시작해 근처에 있는 토교저수지에 다다랐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두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철원에 이렇게 큰 저수지가 있다는 것과 그 저수지가 꽁꽁 얼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그 저수지에 두루미와 재두루미, 흰꼬리수리, 쇠기러기 등 천연기념물 여러 종이 대거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막 동이 트려 할 때 한 무리의 쇠기러기 떼가 갑자기 나타나 하루를 시작하는 비상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인지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저 ‘우와’를 남발할 뿐이었습니다. 무리를 지은 쇠기러기들의 비상이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두루미들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기러기들과는 달리 두루미들은 떼로 지어 다니지 않고 가족 단위로 움직였습니다. 나는 모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리 눈은 연신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기 바빴습니다. DMZ는 분단이 만들어낸 기형적 장소였지만 지금은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생명들이 평화로이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어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죄악들의 결과물조차도 생명과 평화를 바라는 생명들의 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저 두루미가 증명하는 듯 뽐내며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이곳이 통일 이후에도 개발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한탄강 순례를 하며 끊어진 다리 위에서 지금의 현실과 마주합니다. 새들처럼 자유로우면 좋겠지만 지금은 자유가 없고 평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다리를 뛰어넘는 상상을 하며 손잡고 기도하고 함께 살아간다면 언젠가 저 끊어진 다리를 넘어 북녘의 친구들에게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마침내 개신교 최초의 수도원인 대한수도원에 다다랐습니다. 경계를 만들고 울타리를 만들어 안전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작은 마음에, 그분의 너른 품, 담을 허무는 그분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흩어지지만 철원에서 마주했던 평화의 씨앗들을 마음에 잘 새기고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의 평화를 비는 친구가 되어 새롭게 살기로 했습니다.

정도영 | 인수마을에서 벗들과 함께 살아가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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