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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명의 희망을 묻는다
농도 상생(相生) 마을 공동체, 청년을 만나다

청년아카데미에서 지난 4월 말 ‘농도 상생(相生) 마을공동체’를 주제로 강의를 열어 강원 홍천마을과 서울 인수마을 공동체를 소개했다. 홍천마을에 있는 박영호 님(생태건축 흙손), 이한영 님(밝은누리움터), 박민수 님(생동중학교·삼일학림)과 인수마을에 있는 김미숙 님(도토리공동육아어린이집), 고경환 아름다운마을밥상 지기, 박지혜 간사(대학생 교육단체), 신원 님(로맥스테크놀로지)이 얘기한 내용을 정리했다<편집자 주>.


흙 살리고 토박이 씨앗 지키는 '하늘땅살이'

이한영 선생은 홍천 서석에 있는 ‘밝은누리움터’에서 농사짓고 밥상 차리고, 학생들과 함께 농사를 배우고 가르치며 지낸다.

“홍천에 자리 잡고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뒷간과 거름간을 지은 일입니다. 밥상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똥오줌을 모아 거름을 만들고, 농사지은 것과 자연이 준 선물로 밥상을 정성껏 차리는 일이 생명순환의 삶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로 여겼던 똥오줌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자란 생명을 다시 우리 몸에 들이니, 버리는 것 없이 순환의 원을 그리게 됩니다.

농사를 ‘하늘땅살이’라고 부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생명과 조화를 이뤄 사는 것이 사람의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비닐집이나 비닐덮개를 쓰지 않는 것에는 흙 속에 사는 무수한 생명의 호흡을 막지 않고, 비닐쓰레기로 흙을 병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서 대대로 심어온 토박이씨앗을 구해서 심고, 다시 씨앗을 받아서 심습니다. 오늘날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종자회사에서 씨앗을 조작하여 생산력과 자기 재생능력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크고 균일하게, 빨리 자라고 많이 생산할 수 있게 종자를 개량합니다. 이 과정에서 씨앗은 고유한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씨앗은 생명에 위협을 주게 합니다. 그래서 토박이씨앗을 잘 지켜내고자 합니다.

유통과 소비를 위해 농사지으면, 대량생산에 마음이 기울어 대형 농기계,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게 됩니다. 자기 필요에 맞게, 내가 힘들일 수 있는 만큼 농사짓습니다. 호미 한 자루, 낫 한 자루 들고 밭에 가면 기계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기계 속도를 따라가느라 보지 못했던 생명이 새롭게 보입니다. 생명을 보살피며 사랑과 인내를 키워가고, 땀 흘리는 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선물도 얻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에너지

박영호 님은 ‘생태건축 흙손’에서 같이 집을 짓고 대안에너지를 연구하면서,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에서 학생들에게 수학·과학·기술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그는 자연과 어울리고 생활 터전에 적합한 건축과 생활기술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환경을 파괴하고 다양한 생명에 위협을 주는 오늘날 문명을 특징짓는 다른 한 축은 ‘도시’ 속 생활양식입니다. 시멘트 건물에 둘러싸여 살면서 다른 생명과 교감하는 법을 잃어갑니다. 도시 속 수많은 거주자를 위한 에너지와 먹거리는 저 먼 곳부터 세워진 전력망과 유통망을 통해 공급됩니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전국의 자원에 기대어 연명하는 것이 도시문명의 실체임에도 도시는 찬란한 현대문명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강원 홍천에 와서 도시에 길든 관습을 벗고 새로운 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스스로 짓고 삶의 소소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가는 역량을 길러가고 있습니다. 에너지문제는 도시보다 농촌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시골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대부분의 농가는 석유 아니면 심야전기를 난방에너지로 씁니다. 당연히 상당한 비용이 난방에 들어갑니다. 물은 보통 지하수를 쓰는데, 전기 펌프로 수십미터 아래에 있는 물을 퍼올려 씁니다. 전기가 끊기면 물도 끊깁니다. 스위치 하나만 켜면 무한정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삶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몸소 겪었습니다.

생태적인 건축은 집을 구성하는 소재나 건축방식이 전부는 아닙니다. 농촌에 살고 흙집에 살면서도 도시적 삶과 다르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때마다 주어지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하며, 생명을 살리는 기술과 노동을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마을공동체'로 '더불어 살기' 배우는 교육

박민수 님은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정치·경제·역사·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삶이라는 토대 위에서 교사와 학생이 같이 공부하고, 배운 대로 살아가는 교육을 구현하고 있다.

“홍천에서 학생들은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고, 농(農)에 기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어울려 지내며 자기 삶의 규율을 기르고, 학교에서 배운 가치대로 생활하도록 돕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더불어 사는 역량을 키워나갑니다.

삼일학림은 청소년과 청년, 성인이 함께 공부하는 배움터입니다. 대학입시에 종속된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등·대학 과정을 통합했습니다. 생명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늘·땅·사람의 조화 속에서 온 생명과 더불어 살고 평화를 이루며 살도록 교육합니다.

삼일학림과 생동중학교는 농도 상생(相生) 마을공동체 생활과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세운 배움터입니다. 서울 인수마을에서 육아 품앗이와 공동육아, 마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세워간 흐름이 홍천에서 초등 이후 과정을 밟아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마을공동체라는 기반이 있기에 힘 있게 대안 교육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우리 아이'로 함께 키우다

김미숙 님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마을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풀어나갔다. 지금은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세운 도토리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미숙 님은 결혼·임신·출산·육아·교육 과정에 미치는 자본의 질서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을공동체에서는 자본·부동산에 휘둘리지 않고 결혼합니다. 혼인의 때를 정하고 어떤 의미를 담아 어떤 형식으로 예식을 치를지 함께 의논합니다. 신랑신부의 고백과 함께하는 이들의 축하를 담은 소박하고 즐거운 잔치를 함께 준비하고 맞이합니다.

임신했을 때 마을공동체에서 임신·출산·육아를 함께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형아 검사나 입체초음파 같은 것들로 아이 상태를 알고자 하고, 병원 관행에 따라 아이의 예방접종 여부를 고민하는 비주체적인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뱃속 아이와 교감하고 자연분만을 하고자 공부하며 운동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조산원에서 남편과 뱃속의 아이와 함께 호흡을 맞춰 출산한 경험은 생명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2013년 육아 품앗이 하던 부모들이 마음을 모아 공동육아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도토리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출발입니다. 부모·교사들과 이모·삼촌들이 기금을 모아 터전을 구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힘 모아 청소하고 벽화도 그렸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두루두루 살펴주는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건강도 사귐도 살리는 '밥상 공동체’

고경환 님은 아름다운마을밥상에서 같이 일하는 이들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로 밥을 지으며 밥상 공동체 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마을밥상에는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어린이, 청장년 어른 등 마을사람들이 누구나 찾아와 밥상 교제를 나눈다.

“아름다운마을밥상은 서로의 안색을 살피고, 서로 일상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갓난아이부터 학생들, 직장인, 아이들과 같이 오는 엄마나 아빠가 편안하게 밥을 먹습니다. 지역주민도 함께 이용하는 식당입니다.

우리 땅에서 자란 친환경 농산물로 음식을 만듭니다. ‘무엇을 먹을까’와 ‘어떻게 먹을까’를 같이 고민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립니다. 제철과 절기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현미나 오분도미 잡곡밥을 차립니다. 마을밥상에서 나온 음식부산물은 모아서 정기적으로 강원 홍천마을로 보내줍니다. 음식부산물은 농사짓는 데 필요한 거름이 됩니다. 농촌과 도시 마을이 서로 교류하며 생명순환 농사에 함께하는 것이죠.

마을사람들은 마을밥상을 제집처럼 이용하면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생깁니다. 가정집의 부엌살림이 줄어듭니다. 집에서 잘 안 쓰는 식기류나 주방 도구, 가전제품을 밥상에 기증하는 일이 생깁니다. 밥상을 돌잔치나 모임 공간으로 쓰기도 합니다.”

청년들에게 '잃어버린 꿈' 되찾아 주고파

박지혜 간사는 대학생 교육단체에서 활동하며 청년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청년들과 동고동락한 지 해수로 15년째다. 박 간사는 대학에서 경쟁과 취업 준비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대학 진학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학창시절을 보냅니다. ‘대학만 가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안고 지냅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 맞는 현실은 ‘취업 전쟁’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가 됩니다. 영어점수, 봉사활동, 공모전, 인턴 등 최소한 남들만큼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새내기들이 종종 울먹이며 이야기합니다. ‘대학에 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 다시 또 경쟁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동아리방에서 밥을 자주 해 먹습니다. 혼자 밥 먹는 학생들이 많은데, 밥상에 둘러앉아 삶을 나누는 것을 중요한 문화로 일구어갑니다. 학생 몇 명이 서로 더 긴밀하게 만나고 잘 살아가고자 학교 앞에 ‘공동체 방’을 꾸렸습니다. 함께 생활규율을 지켜가고, 배려하며 지내는 것을 몸에 익힙니다.

학생들과 대학교라는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없었다면, 이 일을 감당할 힘이 없었을 겁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낸 학생들이 서로에게 끈끈한 동지가 되어 졸업한 이후에도 더불어 살아가길 바랍니다.”

'직장 위한 삶'보다 '삶 위한 직장'을

신원 님은 10년 차 직장인이다. 매일같이 한강을 가로질러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한다. 풍력발전기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강원 홍천에 가서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친다. 마을공동체에서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는 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며 지낸다.

“직장을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다 보면, 관심사가 달라 깊이 관계 맺기 어려운 동료들이나 불합리한 조직 구조가 힘들게 다가옵니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 외에 다른 목적을 찾기 어렵기도 합니다. 한 개인이 어떤 변화도 도모하지 못할 것 같은 거대한 벽처럼 다가옵니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잘 버텨내는 것 자체가 큰 수확입니다. 그 조직을 바꾸어낼 위치에 있지 않고, 아직 대안을 만들 역량이 없기에 자기 생명력을 보존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자리 잡고 역량을 쌓으면 조금 더 적극적인 시도를 합니다. 습관적인 야근문화를 없애기 위해 퇴근시간을 제한하고, 팀원들과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남성팀원을 위해 배치를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휴가문화도 바꾸고자 애씁니다. 저도 지난 몇 년 동안은 휴가철에 홍천마을에서 학교와 집 짓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직장에서 늘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몸으로 일하며 세속에 찌든 마음을 정화하고 휴가 이후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반생명적인 힘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직장이 가진 절대화된 위상을 상대화하고, ‘직장을 위한 삶’에서 ‘삶을 위한 직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공동체적 삶을 중심에 두고 일한다면, 직장에서 당당하게 일하면서 반생명적인 노동문화에 맞설 수 있습니다.”

임안섭 | 서울 인수마을과 강원 홍천마을을 오가며 마을신문을 같이 만듭니다. 청년아카데미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더불어 잘 사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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