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마을 하늘땅살이 12~1월 날적이
12월 12일
밤사이 내린 눈이 발목 훨씬 위로 쌓였다. 한 시간 넘게 눈을 치우고 먹는 아침죽은 꿀맛, 모두들 두 그릇씩 뚝딱이다. 이후에도 한 동안 곳곳에서 눈 쓰는 일이 이어졌다.
메주의 쿰쿰한 냄새와 함께 보낸 지 벌써 한 주가 더 지났다. 지난 해 메주 띄우던 방과 또 다른 환경이라 메주 띄우기가 처음인 듯 여겨지는 순간들이 많다. 아무래도 올해 방 안 온도가 높은 편이라 마르면서 띄워지고 있는데 메주 곰팡이 양, 종류가 지난해보다 훨씬 많다. 메주 걸 곳이 마땅치 않아 빼곡하게 건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어김없이 그런 곳에 푸른 곰팡이가 잔뜩이어서 온도 뿐 아니라 통하게 하는 것에도 마음을 쓰게 된다. - 한영
12월 16일
올해 메주는 마르면서 갈라지는 정도가 심해서 메주틀에 넣고 모양 잡을 때 더 꾹꾹 눌러줄 걸 그랬나, 돌아보게 된다. 마르면서 띄워지는 지금 상황에 좀 더 잘 마를 수 있게 득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먼지나 잡균이 속까지 들어갈까 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 마음이 요동치지만 냄새가 그리 나쁘진 않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고 지내려 한다. 늦게 거둔 서리콩, 갈무리도 꼼지락거리다 오늘에서야 마무리했다. - 한영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면서 새해 하늘땅살이를 계획해야지
12월 20일
요사이는 2015년 수첩을 만들고 있다. 하늘땅살이 절기달력을 수첩에 맞게 편집해서 인쇄하고, 여러 장으로 묶어 실로 꿰매고, 종이 붙이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쓰면서 내년 하늘땅살이를 계획해야지. 그 전에 냉철하게 올 한해 하늘땅살이를 돌아보고 평가하며 지내야겠다. - 승화
12월 22일
올해 동지는 팥죽을 안 쑤어먹는다는 애동지라는 걸 방앗간에 새알심 빚을 쌀가루 내리러 가서야 알았다. 음력 날짜가 아직 생활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걸 이렇게 확인한다. 잠깐 멈칫했다. 한 달 전, 학생들이 동지 때 팥죽 끓여달라고 갈무리하자마자 밥상으로 보내준 팥과 수수, 한 줌이라도 올해 동지팥죽에 보태고 싶다는 손길, 함께 팥죽 끓여보고 싶다던 학생들을 떠올리니 고민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새해 밝아오기 전 마지막 날, 한 해 농사 갈무리한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나눠먹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여럿이 둘러 앉아 새알심도 빚고, 맛있게 나눠 먹었다. 곁들인 동치미도 맛있게 익어있었다. - 한영
12월 23일
메주에 곰팡이 생기는 기세가 주춤해졌다. 좀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하겠다 싶었는데 며칠 미루다 오늘에서야 아랫목에 모셔 이불 덮어두었다. 몇몇 메주는 띄워지기엔 많이 마른 편이지만,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 한영
불필요한 것에 마음 끄달리지 않고 고요하게 성탄절을 나는 시골살이의 기쁨
성탄절에 학생들이 맛난 밥상을 손수 차려 주었다 .
12월 26일
불필요한 것들에 눈과 마음 끄달리지 않고, 고요하고 차분하게 성탄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시골살이가 주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다. 그러는 중에도 한 해 수고한 이들 생각하며 맛있는 밥상을 손수 차려주는 학생들이 있었고, 지난 한해 돌아보며 이야기 나누는 묵직한 시간도 있었다. 나의 오늘을 돌아보고, 막연한 가운데 내일을 살아갈 힘과 방향을 찾는 시간이 되었다. - 민선
12월 29일
서울에서 온 밥상부산물, 거름더미에 더했다. 지붕 위 쌓인 눈, 밭이랑 덮은 눈 녹아내리는 요즘, 날이 포근해서인지 꽝꽝 얼어있진 않았다. 마른 재료 섞어줄 것을 미리 준비해두지 못해 부산물통 비우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 안 그래도 질척거리는 거름더미인데 다음해 이른 봄에 마른 재료 넉넉하게 섞어줘야겠다.
지난 주 내내 사골 진하게 고아낸 가마솥, 닦고 정리해두었다. 아직 대량으로 조청 만들 계획은 없으니 기나긴 쉼에 들어간 셈. 가마솥 길들이는 동안 함께 지내는 고양이 도토리가 구경하듯 주변을 맴돌았다. - 한영
1월 12일
한 달 남짓 한 방에서 함께 지내던 메주, 딱딱하게 굳어지고 색깔이나 냄새, 곰팡이 기세에 큰 변화가 없어 보여 상자에 넣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 겉으로 곰팡이가 요란하게 피었어도 냄새는 고만고만 좀 더 떴으면 좋았을 메주도 보이고, 곰팡이가 없어보여도 속은 짙은 고동색에 냄새도 간장냄새가 나는 메주도 있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메주도 있다. 서로 어우러지길 바라며, 큰 항아리 구해두어야겠다.
몇 달간 모아둔 아궁이재, 부산물 거름더미에 부었다. 부산물더미 위에 올라서서 장화로 쓱쓱 재를 고루 펴는데 소한-대한 사이 날씨 치고 포근한 탓인지 더미 속으로 발이 쑥쑥 들어갔다. - 한영
1월 19일
밤사이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아침 먹기 앞서 눈을 쓸었다. 어젯밤 잠깐 깨어 내리는 눈을 보았는데, 조용히 내리는 눈이 겨울밤을 더 고요하게 만드는 듯 했다. 낮에는 기온이 꽤 올라가서인지, 이전에 내려 얼어 있던 눈까지 다 녹고, 처마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져 비오는 것 같았다. 오가는 길이 질척거렸지만, 물기 담뿍 머금은 밭은 촉촉하니 좋아보였다. - 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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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 민선, 한영 | 학교와 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생명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