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살이꽃으로 단장한 터전.
9월 1일
밥상부산물에 마른 재료들이 덜 섞였는지 질척거린다. 나무껍질, 나뭇가지 긁어모아 고루 섞고 덮개를 열어두었다. 배추모종은 떡잎이 노래지기 시작했는데, 옮겨심기엔 아직 어리다. 봄에 옮겨 심은 곤드레는 보라색 꽃 피고 하나둘씩 지기 시작, 씨앗 받을 채비해야겠다. - 한영
9월 2일
갓이 2주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좀 더 촘촘히 줄뿌림했다. 싹도 나지 않은 열무, 아기 배추와 어린이 무를 보며 내년 봄 채종이 벌써부터 고민이다. 천천히 길을 찾아보며 잘 길러야지. 그나저나 배추모종은 더 노래진다. 오늘내일 큰 비 보내고 밭으로 보내야겠다. - 한영
▲ 나락 차오른 밭벼.
9월 3일
올해 오이와 수세미는 영 기운이 없다. 오이는 커지지 않고 노각이 되어서 씨앗 조금 남기고는 따먹는 재미를 별로 못 누렸다. 수세미는 줄기를 잘 뻗지 못해 아직도 자그만하다. 봄비 적었던 해여서 그런가 싶다. 나락 차오르고 있는 밭벼와 늦게 심은 옥수수를 마음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 민선
9월 4일
추석 전인데, 녹두와 참깨가 벌써 익어간다. 추수가 시급한 녹두 얼마 따두고 길을 나선다. 사흘 뒤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빨리 다시 와서 이놈들을 보고 싶다. - 승화
9월 4일
드디어 배추 아주심기했다. 모판에서 자란 모종은 옮겨심기 몸살을 견딜 수 있을까싶게 작다. 그나마 밭에 작게 모종밭 만들어 심은 아이들 상태가 좋아서 다행. 촘촘히 심어서 초기 성장에서 서로 힘을 준 게 아닐까 싶다. 이 씨뿌림 간격을 잘 기억해둬야겠다. - 한영
9월 4일
찰옥수수가 드디어 단단히 열매 여물기 시작한다. 익은 몇 개라도 우선 따먹고 싶었지만, 조금 더 익기를 바라며 추석 이후로 수확을 미룬다. 옆에서 녹두 따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얼른 녹두밭으로 달려가 까맣게 익어가는 녹두를 딴다. 있는 주머니 다 채우고 손에도 가득 들고 온다. 따뜻한 햇볕 맞으며 똑똑 녹두 따는 것은 내가 참 좋아하는 가을일. - 민선
▲ 오랜만에 장작 패며 땀을 낸다.
9월 5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요즘, 이틀에 한 번 꼴로 구들 데워 지낸다. 오랜만에 장작 패며 땀도 좀 내고, 숲에서 잔가지도 줍고 잣도 주웠다. 줍다 보니 잣이 점점 많아져서 잔가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한동안 숲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 한영
9월 9일
맑은 날이 이어진다. 배추를 생각하니 비가 한차례 오면 좋겠다 싶다가도, 익어가는 곡식과 채종 기다리는 상추꽃 생각하면 감사한 일. 일단 아침저녁으로 내리는 이슬에 기대해보고, 정 안되면 모아둔 빗물 한 차례 줘야겠다. 밭에서 종 모양 토마토 양손 가득 따오고, 숲에 산책 갔다가 잣 한 아름 주워온다. 가볍게 길을 나서더라도 주머니를 챙겨가야 할 때다. 열무는 싹이 고르게 났는데 갓은 띄엄띄엄 나서 무엇이 맞지 않았나, 생각에 잠기게 된다. - 한영
▲ 네 개의 방에 촘촘히 자리잡은 검은깨.
9월 10일
명절 지내고 거의 일주일만에 밭에 가본다. 안 보이던 오이는 어느새 노각이 되어 주렁주렁 달렸다. 녹두, 땅콩과 검은깨도 많이 여물었다. 내일 아침, 추수할 생각에 큰 미소 지으며 잠들겠다. 아쉽게도 김장배추와 무가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이다. 연작 피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 곳에 파종해두어 그나마 다행이다. - 승화
9월 10일
참나물을 뿌리째 얻게 되어 밭 빈 곳에 옮겨심었다. 식구 많다고 삽으로 한가득 퍼주셔서인지 많다. 산에서 뜯어왔다는 곰취, 당귀잎도 선물로 받았다. 잎이 크고 세어질 대로 세어졌다. 곰취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장아찌 담궜다. 다른 장아찌 국물을 다시 썼는데 맛이 있으면 좋겠다. 당귀잎은 말려서 가루로 내어 향신료처럼 써보려고 한다. - 한영
9월 11일
어제 옮겨 심던 참나물 마저 옮겨심었다. 씨 맺힌 아이들도 있어 반가워하며 여문 씨는 챙겨둔다. 봉투가 없어 커다란 팥잎 한 장 뜯어 쌈 싸듯 여며왔다. 옮겨 심은 곳 중심으로 뒤 이랑, 옆 이랑 번져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푼다. - 한영
9월 11일
교잡을 피해 늦게 심은 검은찰옥수수는 이제 열매가 단단해져간다. 잎을 살짝 벗겨보았더니, 아직 흰색이다. 알이 모두 여물고 그 다음 검은색으로 익어가는 거다. 얼른 다시 잎을 덮어 주었다. 그동안 느긋하게 기다렸는데도, 마지막 조금 더 익기를 기다리는 것은 조바심이 난다. 손바닥보다도 작지만 찰지고 맛나던 그 맛이 생각나서 빨리 맛보고 싶은 게다. 지난해 씨앗으로 남겨둔 것들 몽땅 쥐들에게 먹힌 것을 기억해서, 씨앗 할 것들은 양파망으로 꼭꼭 싸주었다. - 민선
9월 12일
열매 맺은 조롱박은 단단하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려니, 익기 전에 뚝 떨어지기도 하고, 물러지기도 한다. 바가지 만들려던 부푼 꿈이 점점 멀어져가는 듯해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호박도 노랗게 익어가게 두려니 먼저 물러져버려서, 푸를 때 따먹어야겠다. 노랗게 여문 단단한 박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민선
9월 12일
뒷간에 앉으면 창으로 보이는 밤나무에 밤송이가 열렸더랬다. 작은 산밤이지만 꽉 찬 노란 살이 포슬포슬하면서도 담백한 단맛을 선물해줬다. 밭 둘러보며 빈 밭 살피고, 남은 가을농사 작물자리 생각해본다. 내년 농사계획까지 연결된 것이라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곤드레, 쑥갓, 살살이꽃 씨 보이는 대로 받아둔다. 마는 잎사귀 주위로 동그란 열매를 매달았다. 올 봄에 심은 영여자가 이렇게 생겨났구나, 반가웠다. - 한영
9월 15일
납작하던 작두콩깍지는 어느새 도톰해졌고, 옥수수대를 지주대로 삼은 울타리콩도 주렁주렁 꼬투리를 매달았다. 잎만 무성하던 줄콩도 드디어 꽃이 만개했는데 조금 더 힘내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서늘한 날씨에 배추벌레가 많진 않은데 먹힌 흔적은 크고, 더디 자라는 느낌이다. 상추꽃대 하나 베어 몇 개 까봤다. 흰 솜털 아래로 은은한 비단 같은 상추씨가 작은 꽃처럼 모여 있는 걸 보고 한참 감탄했다. - 한영
9월 15일
지난주에 수확한 참깨 말려서 오늘 털었습니다. 천막 깔고 막대기로 두들기고, 참깨가지 흔들어서 소리 나는지 확인하고, 꼬투리 까서 참깨 있는지 확인하며 제법 꼼꼼하게 털었습니다. 많지 않은 양일 때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밤과 대추, 잣이 풍성한 때입니다. 함께 지내는 분들이 산밤을 주워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 윤희
9월 16일
여럿이 힘 모아 농사살림 모여 있는 비닐집 정리했다. 각종 살림살이 위치며 형편 등을 파악해두고, 채종 위한 공간도 전보다 조금 더 확보해두었다. 다시 쓰려고 모아두었으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끈이며 봉투 등에 생명 불어 넣는 마음으로 시간과 공을 들여 정리했다. 쌀뜨물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해질녘이나 이른 아침 배추, 무 밭에 밥 주듯 주고 온다. - 한영
9월 18일
선물 받은 고구마줄기, 여럿 도움 받아 부지런히 껍질 벗겨 김치로 담궜다. 김치 귀한 때, 큰 김치통 꽉 채우고 나니 든든하다. 껍질 잘 안 벗겨지던 줄기는 살짝 데쳐 묵나물로 말리고 있다. 가을볕 아까웠는데 말려둘 것이 생겨 내심 기뻤다. 이웃에서 무, 갓 솎은 것 주셔서, 갓은 김치로 담궈두고, 무는 나물로 무쳤다. 깻잎 단풍 들기 전 푸른 깻잎 넣고 달걀말이 부쳐 저녁밥상 차렸다. 6월 중순 담근 매실효소도 걸렀다. - 한영
▲ 다음 달에 밭에 들어갈 우리 토종밀씨.
9월 19일
드디어 팥잎쌈을 밥상에 올렸다. 팥잎 찔 때 팥 삶는 냄새가 나서 신기했고, 강된장에 쌈 싸먹으니 구수한 향이 별미였다. 봄에 개간하지 못한 자투리땅, 개간 들어갔다. 풀 베고나니 생각보다 넓다. 틈날 때 조금씩 개간하면 올가을 밀, 보리농사 하거나 못해도 내년 봄농사 준비를 미리 해둘 수 있을 게다. 월동할 밀동초, 시금치밭에 들어갔다. - 한영
9월 20일
아침 먹고 잠깐 뒷숲을 누비고 다녔는데, 오늘 참으로 먹을 만큼 밤을 주웠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밤 구경도 좋았고, 도토리를 두 줌 정도 주워와서 도토리묵 쑤어볼 계획도 세웠다. 고구마줄기 김치 맛있게 익어 점심밥상에 내고, 또 선물 받은 고구마줄기 볶아서 들깨가루에 버무려 먹었다. 부지런한 여러 손길 덕분에 고구마줄기 알차게 먹는 가을이다. - 한영
9월 22일
노랗게 물든 콩잎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한잎 두잎 따서 모아 슴슴한 소금물에 삭혀두었다. 콩잎 질 때까지 한동안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될 듯하다. 큰 비 앞두고 상추 꽃대 베어 후숙하게 말려 두고, 아직도 꽃이 활짝 펴있는 쑥갓은 씨앗 여문 것만 베어 모아둔다. 쑥갓꽃 참 길게 본다. 밭 둘레 쑥부쟁이 꽃, 왕고들빼기 꽃과 어우러져 가을들꽃 구경온 것 같다. - 한영
9월 23일
주워온 밤과 대추를 맛보며 지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올해 산초 열매는 시들하고, 밤과 대추 열매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합니다.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밤과 대추를 보며 풍성한 가을을 맛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내릴 비 소식에 집 주변 정리하며 보냈습니다. - 윤희
9월 23일
오늘도 단풍콩잎 모았다. 노랗게 물들었으나 시들지 않은 콩잎을 따는 건 쉽지 않다. 귀한 음식이 되겠다. 토실토실 울타리콩 몇 꼬투리 따와서 씨로도 남기고, 내일 밥밑콩으로도 챙겨두었다. 김장밭 지난 번 웃거름이 연하기도 했고, 내일 비소식 있어서 두 번째 묵은 오줌웃거름 줬다. 쪽파는 첫 번째 웃거름 먹은 셈. 배추 일부 솎아냈는데 한 포기라도 귀한데다 기세가 좋은 녀석이라 먹지 않고 빈 곳에 옮겨 심어둔다. 내일 충분히 비 맞고 자리잡길. - 한영
9월 24일
큰바람 사그라들고 차분하게 비 내리는 날, 함께 농사짓는 이들과 다음 달에 밭에 들어갈 밀, 보리, 마늘 공부했다. 보리 농사에 더해 엿기름 내는 법까지 찾아와서 공부하며, 식혜, 조청 해먹을 생각에 쌀농사도 더불어 꿈꾸는 시간이기도 했다. 밭에서 직접 이 생명들을 마주하며 더 많은 배움을 해갈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소망을 심어둔다. - 한영
9월 25일
비온 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잣과 밤이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떨어진 듯하다. 산책하듯 숲에 다녀오기만 하면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마을 할아버지께서 가지 한 상자 선물로 주셨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채반에 늘어놓고 장독대에서 말렸다. 한동안 비예보 없으니 잘 마를 게다. 단풍깻잎이 한 아름 선물로 와서 소금물에 삭혀두고, 단풍콩잎도 더 추가했다. 양파가 피워올린 꽃 속에 씨가 맺혔는지 몰라 비닐집 채종밭 한 쪽에 뿌려두었다. - 한영
9월 26일
배추, 무 많이 컸다. 옮겨 심은 건, 몸살을 피해갈 수는 없나보다. 시들한 모습에 눈길도, 마음도 한 번 더 간다. 단풍콩잎 따서 모으던 유리병에 마저 채우고 뚜껑 덮는다. 지난 번 소금물이 너무 싱거운 듯하여 좀 더 짜게 만들어 삭혀두었다. 개간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비 온 뒤라 한결 수월하게 고랑 냈다. 밀 심을 수 있겠다. - 한영
9월 28일
겨울을 날 장작 정리해두고, 여름옷 정리해서 넣고, 겨울옷 꺼냈다. 아침저녁 쌀쌀해지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 하고 나니 개운하다. 내일 오전 잠깐 지나간다는 비소식 확인하고, 비 맞으면 안 되는 아이들 처마 밑으로 넣어주고 왔다. - 한영
9월 29일
껍질 살짝 벗겨보고 아직 안 익은 것 확인하고 황급히 덮어주며 옥수수 익어가기를 기다린 것이 몇 주. 오늘은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밭에 다녀왔다. 까맣게 익기를 기다렸는데, 오히려 그렇게 된 것은 너무 여물어 단단하다. 때를 잘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다 커도 손바닥보다도 작은 옥수수. 열 알 따와서 친구들과 달게 나누어 먹었다. 살짝 추워지는 때 먹는 옥수수는 한여름보다도 훨씬 맛나다. 길게 기다린 보람이 있다. - 민선
9월 30일
어제 습한 기운으로 말리던 가지묵나물에 곰팡이 폈다. 한 번씩 뒤적여줘야 했는데 터전을 비우면서 놓친 탓이다. 곰팡이 생긴 것 골라내 밭으로 보내고, 채반에 다시 펴 널면서 햇볕에 바람도 충분히 쐬었더니 다행히 바짝 마른 느낌이다. 배추, 무 제법 커서 흙 충분히 젖은 김에 솎아냈다. 된장국 끓일 때 넣어먹자 싶어 일단 보관해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주웠다. 많은 식구들 마음껏 나눠먹을 정도로 많이. 비오고 바람이 더 서늘해졌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불어 빨래 여러 번 다시 널었다. - 한영
한영,윤희,민선,승화 | 학교와 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생명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