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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마을 하늘땅살이 날적이

▲ 정성껏 만든 상토에 배추씨를 넣는 삼일학림 학생의 손길.


8월 1일
메주콩밭 맸다. 풀에 치여 연약한 느낌이라 북주기도 하고 두툼한 풀덮개를 사이사이 깔아두었다. 오후에 오이소박이 담그고, 밭 둘러보며 며칠 전 열렸을 것 같은 여주 열매, 작두콩 꼬투리, 울타리콩 꼬투리와 반갑게 인사했다. 저녁에는 김장농사 함께 지을 이들과 배추 모종 냈다. 부엽토, 모래, 재를 섞어서 체에 곱게 내려 상토 만들고 배추씨앗 넣었다. 누군가 기운을 다 썼다고 했는데, 오롯이 그 기운 받아 싹도 잘 나겠지. - 한영

8월 1일
이른 아침 밭벼 김매고, 강낭콩 밭 정리하고, 김매기하며 나온 풀들은 두둑에 놓고 오줌 뿌려 주었습니다. 요즘처럼 한차례씩 비 내리는 때에는 뽑아놓은 풀들도 밭 위에서 다시 뿌리 내려 살아나기에, 오줌 뿌려 숨을 죽이는 것을 선택합니다. 저녁햇빛 받으며 강건너밭 산책삼아 다녀오는 길, 마을 들머리 소나무숲에 앉아 푸른 하늘에 흐드러진 붉은 노을빛 받으며 한참이나 앉아 있었네요. 온종일 하늘과 구름이 맘껏 그림을 그리더군요. 눈부신 날이었습니다. - 민선

8월 2일
아주까리 꽃을 처음 본다. 붉은 실같은 가느다란 꽃잎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짬짬이 여기저기 보이는 대로 김매고 밭에 있는 것들 거둬들여 다듬고 밥상 차려냈다. 쑥갓꽃 몇 송이가 지긴 했는데 그 속에 씨가 차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내일부터 이어진다는 비바람 소식에 비닐덮개 다시 단단히 여며둔다. 여주, 작두콩 밭에 거름 넣어주었다. - 한영

8월 5일
요새 짐승들과 경쟁하듯 열매를 따오느라 바쁘다. 딸기, 옥수수, 땅콩에 이어 토마토와 참외까지 손대고 있다. 잘 익으라고 아껴둔 대왕토마토가 꼭지만 남아 있어 또 허망했다. 인간에게 받은 피해들 보상받으려고 이러나 싶다가도 그런 것 다 받아줄 품은 없어 투덜댄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도 없다. 그래서 요즘엔 붉은 기운이 보이기라도 하면, 미련 없이 따온다. 8월에는 워낙 수확물이 많아 옥수수, 오이, 토마토, 참외, 감자 밭에서 난 것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언젠가 밭에서 난 것들로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를! - 승화

▲ 배추싹을 보고 가뿐한 마음으로 들살이를 떠났다. -삼일학림 학생의 하늘땅살이 날적이 중에서


8월 7일
김장밭 어느새 풀밭이 되어 다시 다듬었다. 어렵사리 구한 무씨,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넣었다. 채종할 배추도 조금씩 직파했다. 모종낸 배추싹이 어제, 오늘부터 얼굴을 조금씩 보인다. 너무 늦는다 싶어 무엇이 문제였나 생각에 잠기게 된다. 김장농사가 늦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는 차에 문득 첫 해 김장농사 생각이 났다. 호흡을 고르며 간절함이 필요한 때. 해가 뜨겁지 않아 김매기 실컷 했다. 봄농사 짓고 풀로 어지럽던 밭도 손대기 시작. 잎이 말라죽어 원래 누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자리에 상사화 꽃이 어느새 피기 시작했다. - 한영

8월 8일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한 듯하여 어제 배추모종 더 내고, 오늘도 김장밭 한켠에 모종밭 작게 만들어서 배추씨 더 넣어뒀다. 상토 물 빠짐, 물 주면서 유실되거나 드러난 씨앗 등 여러 원인을 생각해보고 있다. 골치 아프고, 힘든 경험이지만 어떻게 해석하고, 이후 농사에 배움으로 이어나갈지 전환하려고 애쓰고 있다. 조밭, 장독대 주변 쉬엄쉬엄 김매고 콩 순지르기했다. 오랜만에 해 좋고 바람 많아 빨래가 금방 말랐다. - 한영

8월 9일
바람과 제 무게를 못 버티고 쓰러진 메주콩 북주며 세워주고, 풀 매줬습니다. 주렁주렁 열매 단 토마토와 오이 따고, 고구마순 들추기하면서 반찬으로 먹을 고구마순 땄습니다. 절로 난 들깨 꽃피고 씨 맺기 시작합니다. - 윤희

8월 10일
올해 유난히 칡꽃이 풍성하게 보이고 그 향도 진합니다. 가끔 차 타고 오가는 길에도 자줏빛 붉은꽃이 눈에 뜨입니다. 큰 바람 분다기에 꽃 떨어지기 칡꽃, 황기꽃, 달맞이꽃, 인디언감자꽃 보이는 대로 조금 거두어서 차로 말렸습니다. - 민선

8월 12일
밭에 직파한 배추, 무 싹은 어제부터 고개 내밀고 있다. 직파한 게 잘 틔워내는 것을 보며, 제한된 포트 안에서 수분, 공기, 양분을 모두 조절해야 하니, 모종 키우는 데 최적화되었다는 상토를 구입하지 않고 모종내는 게 직파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전 오후 내내 여럿이 터전 주변 풀 베어 오줌풀거름 더미 크게 두 더미나 만들었다. 풀씨 맺은 부분만 베어내긴 했는데 미처 가려내지 못한 것도 있을 거고, 큰 풀들 작두질하지 못해 나중에 사용할 때 난감하기도 할 거다. 그래도 덕분에 오줌통 대부분 비웠다. - 한영

8월 14일
시기가 매우 늦었지만, 작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마음으로 배추와 토종무 심었다. 우리 밭이 거름져서 작년 배추도 잘 키워낸 걸 믿으며 사죄하고 비는 마음으로 심었다. 다시 한 번 농사는 남는 시간에 설렁설렁하는 게 아님을 느꼈다. - 승화

▲ 뿌리도 없이 심어놓으면 자리를 잡는 토마토 가지를 보며 다시 한 번 생명의 힘에 감탄했다. -삼일학림 학생 날적이에서


8월 15일
밭일 하다가 지칠 때면 토마토 따서 먹고 기운 내고 있다. 작년에는 싱겁게 느껴지던 종 모양 방울토마토가 올해는 맛있다. 씨앗 받으려고 빨갛게 잘 익은 열매를 따서 더 익히고 있다. 배추씨를 나눔 받았다. 구억배추인데 단맛과 갓맛 구분해서 보내주셨다. 채종 중 교잡되었구나, 원래 구억배추는 어떤 맛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일단 두 가지 다 심어봤다. 채종에 마음을 두니 늦은 시기도 괜찮을 것 같다. - 한영

8월 18일
후숙한 토마토 씨앗 받으려고 물에 담궈두었다. 미끄덩한 껍질 벗겨지면 튼실한 씨를 만날 수 있겠지. 적근대 딱 한 포기가 꽃대를 피워올렸다. 시기를 계속 보다가 더 이상 비를 맞히면 안 될 것 같아 베어 말렸다. 노린재 습격에 비도 많이 맞아서 씨앗 상태가 어떨지 궁금하다. 반청무 씨 넣었다. 열흘 전 파종한 무는 꽤 큰 본잎을 두 개나 만들어냈다. 꽃대 올린 상추, 꽃이 지는 쑥갓, 강낭콩 꼬투리, 메주콩꽃, 밀린 빨래… 해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한영

▲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기는 생동중학교 학생들.


8월 19일
방학 보내고 온 학생들과 오랜만에 밭에 올라 작물들에게 인사도 했습니다. 못 본새 열매 달고 있는 토마토 손질해주며 토마토 맛도 보고, 무성해진 고구마줄기 들쳐주며 줄기도 땄네요. 꽃다발 같은 고구마줄기 한 아름 안고 밭에서 내려와서는 고구마줄기 껍질도 벗깁니다. 잎을 한쪽으로 툭 꺾어 쭉~ 벗겨주는데,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한 번에 벗겨지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 재미에 학생들이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자리를 못 뜨고 앉아 있습니다. - 민선

8월 20일
쑥갓꽃 일부 베어다 양파망에 넣어 말린다. 쑥갓 씨를 처음 받는 것이라 영근 씨를 알아보지 못하고 꽤 길게 습한 곳에 둔 셈. 미안한 마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 반반이다. 쪽파 씨 다듬고 손질해서 심었다. 터전밭에서 여러 해 지낸 쪽파여서인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여러 손길 도움 받아 다듬은 고구마줄기는 들깨가루 넣어 볶아 저녁 찬거리로 맛있게 먹고, 오늘 저녁 다듬은 고구마줄기는 내일 김치 담그려 한다. - 한영

8월 23일
어제는 쪽파 씨 다듬고 남은 것 배추 사이에 찔러넣듯 심고, 오늘은 본잎 두세 장 만들어낸 무싹, 얼른 옮겨 심었다. 가장 마지막에 직파한 배추씨, 무씨들도 싹 나기 시작하니 푸르름이 짙어졌다. 여러 방식으로 배추를 키우는 중인데 상토에 모종낸 것에 비해 벌레가 더 많이 먹기도 하고 자라는 속도는 조금 느린 듯하지만 더 야물고 단단하게 크고 있다. 노각오이 작년에는 흔했는데 올해는 귀하고 귀하다. 여럿이 모아서 저녁찬거리로 무쳐먹었다. 제일 잘 익고 이쁜 두 개 골라서 씨앗 받아두었다. - 한영

8월 25일
지난 주, 갓 씨 넣었다. 이번 봄에 밭에서 절로 난 갓에서 밭은 씨앗들이다. 올해부터는 하나 둘 내 손으로 받은 씨앗을 넣고 있다. 씨앗을 심을 때는 늘 설레지만, 내가 직접 받은 씨앗을 넣을 때는 더 새롭다. 한창 열매가 익어갈 무렵인 요즘, 연일 계속되는 비는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덕분에 가을에 넣은 씨앗들이 싹을 잘 틔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승화

8월 25일
아침부터 여럿이 함께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계속 미뤘던 밥상부산물과 전기목책기 정리 오전 내 마무리했다. 배추모종을 끊어놓고 도망가는 벌레들이 많아, 모기장 안에 모셔두었다. 지난 번 단속 이후로 소식이 없던 고라니가 다른 쪽부터 먹어 들어오기 시작, 고라니망 단속하고 주변에 부스럭거리는 것들 매달아두었다. 이 경계선만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 한영

▲ 아욱 씨에 노린재들이 잔뜩 붙어서 빨아먹고 있다. 이놈의 노린재들, 냄새만 나는 줄 알았더니 씨도 빨아먹는다. -삼일학림 학생 날적이에서


8월 27일
지난번 담근 순무김치가 너무 짰는데 마침 옆마을에서 기른 순무가 와서 섞어 버무려두었다. 맛의 조화를 잘 찾아가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쪽파 싹 하나둘 보이기 시작. 무는 쑥쑥 잘 크는데 배추는 직파도, 모종도 점점 먹혀 사라진다. 내년에는 더 넉넉하게 씨를 뿌려야겠다. 씨앗 받는 일이 더 막중해진다. 절로 난 팥이 이랑마다 어찌나 많은지 여럿 베어냈다. 팥 못 심은 게 다행이다. 돌려짓고 이어짓고 섞어짓는 밭 계획이 아직 서투른지라 빈 밭이 많아졌다. 땅의 형편과 씨앗, 밥상의 필요 등을 농사계획에 조화롭게 엮는 힘이 길러지길! - 한영

8월 28일
어제, 오늘은 푸른 하늘에 맑고 쨍한 가을날이다. 하늘 올려다보며, 여러 번 가을 이름을 부른다. 날마다 따먹던 토마토는 이제 끝물이다. 감자 캐낸 밭은 그새 풀천지가 되어, 마늘밭 만들 생각으로 천천히 정리하고 있다. 바가지 만들 생각하며 보고 있던 첫 조롱박이 뚝 떨어져버렸다. 바늘을 찔러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져야 바가지 만들 수 있다는데, 아직 덜 여문 상태로 떨어져버려서 이걸 어찌해야 하나 난감하다. - 민선

▲ 사과참외 위에 앉은 손님.


8월 30일
상추가 작아서 꽃대를 못 올리려나 싶었는데 어느새 쑥~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키가 장대같이 자란 수수도 하나둘씩 열매를 맺고 있다. 마지막 노각 땄다. 찬거리로 무쳐 먹었다. 이제 다음 해에 만나야지. 아침저녁으로 제법 춥다. 완두 지주대로 썼던 나믓가지들 불쏘시개 삼아 오랜만에 구들에 불 땠다. 다음 주에는 배추가 밭으로 가면 좋을텐데, 아직 여린 아가 같은 모종인데다 자라는 속도보다 먹히는 속도가 더 빨라서 걱정이다.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든다. 응원하며 물 주고 오는 길에 어둑해진 하늘 위 초승달이 이쁘다. - 한영

한영, 윤희, 민선, 승화 | 학교와 텃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생명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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