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살리는 밥의 삶…
밥의 삶? 밥의 삶!
"어우러져 살아가는 해·물·바람·흙·벌레와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들, 하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천천히 정성으로 먹고 서로 살리는 밥의 삶 살겠습니다."
매끼마다 밥상 앞에서 고백하는 말이다. 서로 살리는 밥의 삶은 어떤 삶일까? 또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날마다 ‘하늘땅살이’를 하며 자연스레 풀리고 있다.
밭에서 작물들은 온생명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끈끈한 생명력을 발현하며 살아간다. 억압하거나 소외되는 것 없이 모두 어우러져 서로를 살리며 살아간다. 낱생명이 아닌 온생명으로, 자기 빛깔은 그대로 유지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라난 한 생명 안에는 온 우주가 깃들어 있다. 서로 살리는 밥의 삶은 곧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고, 하늘땅살이는 땅을 갈고, 작물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나도 온생명으로 살아가면서 아름답게 지음받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림에서는 매일 하늘땅살이를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밭일을 할 수 있나 생각했지만 갈무리 마치고, 월동할 준비를 하는 지금은 내가 너무 하늘땅살이를 밭일로만 국한시켰구나 생각한다. 하늘땅살이는 밭에 가서 김매고, 거름 주는 것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씨의 변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생명들을 만나고, 밥상을 정성껏 대하는 것이다.
밭에서 작물들을 마주하고,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에는 내 기질이나 성격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 풀 뽑는 것을 숙제로 생각하고 괜히 힘들게 마음을 먹거나, 감자가 늦게 자란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대한다거나, 정성을 들인 만큼의 결실을 맺어주기를 바라는 것 말이다. 내가 잘해준 만큼 상대방도 내게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 바쁜 호흡으로 다른 사람을 기다려 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는 풀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묵혀놓았던 짐도 정리되고, 다른 밭보다 훨씬 늦자란 감자가 자기 호흡에 맞춰 자라는 것을 보면서 바쁜 호흡을 한 번 가라앉히게 된다. 하늘땅살이 하면서 다른 생명의 소리와 변화에 귀 기울이려고 애쓰고 있다.
생활관에서 네 친구들과 한 지붕 아래 지내면서, 즐겁고 힘이 될 때도 많지만, 종종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들이 있었다. 따로따로 지냈다면 문제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한몸살이 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같이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 각자 먹은 식기는 잘 챙겨서 씻지만, 공동 설거지거리는 챙기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하는 사람만 계속 챙겨야 하는 상황들이 종종 만들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잘 하던 친구마저 안 챙기는 거지?’라든지 ‘쟤는 왜 저렇게 뒷정리를 소홀히 하는 걸까?’하며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다가 그 친구에게 잘 챙기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체념하는 마음으로 내가 남은 설거지를 다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는 내 마음만 지칠 뿐, 그 사람이 잘 바뀔 수 없었다. 서로를 살리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계속 얘기해주는데도 왜 저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준 말에는 그 친구를 위해서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만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그 친구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만약 내가 온전히 그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말했더라면 그 친구도 내 마음을 알고 바뀌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또 ‘저 친구는 어쩔 수 없나보다’ 하고 체념하는 마음은 그 친구가 달라질 여지를 닫아놓는 것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변할 수 있는 그 사람을 내 잣대로 단정짓는 것이었다. 내가 소통하고 있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지금은 서로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기가 소홀히 했던 부분들을 애써서 챙겨가고 있다.
매일매일 날씨의 변화에 주목하고 밭에서 작물들을 만나면서 생명의 작은 소리와 변화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 또 나와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부터 천둥이, 땅이(학교 멍멍이)까지 모든 생명들과 함께 서로 살리는 밥의 삶을 계속 해서 살아가고 싶다.
주은 | 배움의 숲에서, 생활관에서, 학교 텃밭에서 서로 살리는 ‘하늘땅살이’를 깨달아가는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