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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와 화해의 영성, 떼제
경계를 넘어 순례하는 신한열 수사


서울 화곡동 시장 옆 좁은 골목길에서 '떼제공동체'를 발견했다. 낡은 나무문패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프랑스 떼제에서 온 수사들이 1979년부터 이곳에 터 잡고 살아왔다. 가난과 분쟁을 겪는 나라들에 들어가는 떼제가, 이토록 길게 한국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만큼 이 땅에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 상태가 길어졌기 때문인 듯싶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1962년부터 떼제 수사가 동유럽을 방문했던 것처럼, 이제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서 고요한 침묵 속에 기도하며 언제 올지 모를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

매주 금요일 기도모임이 열리는 이곳 화곡동 '우애의 공동체'에서 5월 한 달 동안 머물고 있는 신한열 수사(53세)를 5월 5일 만났다. 프랑스 떼제에서 종신 수사로 28년째 살고 있는 신한열 수사는, 한반도 남녘, 북녘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나라들을 다니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올 봄에는 한국에 오기 전 6주 동안 홍콩, 타이완, 중국 등지에서 떼제를 찾았던 젊은이들과 함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떼제 기도모임'을 하고, 평양과 개성에도 다녀왔다. 떼제는 1997년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이어왔다.

떼제공동체는 97년부터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 개성에 있는 육아원을 방문한 신한열 수사.


"1997년 당시 원장 로제 수사님이 100만 프랑이 생겼는데 제게 '누구를 위해 쓸까?' 하고 물어보셨어요. 떼제공동체는 일원 중 누군가 유산 상속을 받으면 바로 씁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요. 그때 식량 부족으로 곤란에 처한 북한을 돕자고 했더니, '좋다, 당장 시작하자'고 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젊은이모임을 할 때였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북한대사관에 전화해서 찾아간 다음에 중국에서 옥수수 900톤 가량 사서 보냈어요. 그때부터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지원을 계속해왔지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별로 소문을 내지 않았어요. 자칫 상대방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어 물질적인 도움은 더 조심스러운 일이고, 또 한편으로는 북한문제가 남한에서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점점 남북 간 교류가 안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지인들에게 같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두유공장에 콩이 떨어져 아이들 두유를 공급하지 못한다고 알렸더니, 여러 분들이 관심 가져서 콩을 살 수 있었어요. 올해에는 육아원 아이들에게 선물할 장갑, 모자, 양말 두 상자를 가져갔어요. 사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짜달라고 했더니, 제 동창들이나 교회 등 여기저기서 보내주셨어요. 지난해 가져가려고 했다가 북한 당국의 에볼라 예방 대책으로 이번에 전해주게 되었죠."

신한열 수사가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적으면 적은대로 꾸준히 나누면서 교류를 이어가고, 물적 지원을 넘어 남녘사람들에게 북녘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오래 되어 굳어버린 '고질병'처럼, 동강나고 갈라진 몸에 무감해진 채 요원한 정치 변화로 인해 더 아픈 현실을 외면하며 사는 우리가, 그들과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도록 그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북녘땅을 직접 밟을 수 없는 이들과 함께 남북한 접경지역에서 '평화와 화해의 순례'를 수년째 해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이어 올해 5월 9일 남북 접경지대에서 진행된 평화와 화해의 순례. 임진강을 따라 화석정까지 걸으며, 노래하고, 침묵하는 떼제 기도는, 곳곳에서 온 남녀노소 80여 명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5월 9일 파주 문산 임진강 일대를 걷는 평화와 화해의 순례를 다녀왔다. 곳곳에서 온 남녀노소 80여 명이 철책선 넘어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화석정까지 10km 가량 걷고 노래하고 기도했다. 성화가 그려진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춰 다양한 언어와 번역본으로 드리는 떼제 예배는, 이탈리아인, 미얀마 성공회 수녀님들, 일본인, 재중동포 2세, 가톨릭과 개신교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평화나 일치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과 교류를 통해 가능합니다." 그의 말처럼 구체적인 한 걸음을 내딛는 순례였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보편을 향해

떼제공동체 신한열 수사.

194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사회에서 화해에 대한 과제를 안고, 왜 그리스도인들은 나누어져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으로 기도하기 시작한 게 떼제의 초기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인종과 국적, 종교, 전통, 언어의 경계를 넘는 화해와 일치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떼제공동체 알로이스 뢰저 원장 수사는 2013년 10월 한국에 와서 신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신자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입니다"며 "신학적으로 완전한 합의를 이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지금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서 그분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는 없을까요?" 하고 반문했다. 분단이 고착되었기 때문인지, 교파를 넘어서 함께 기도하기 특히 어려운 한국 그리스도교 현실을 주목한 말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당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시작됐지요. 그런데 많은 개신교인들이 아직도 가톨릭이 16세기에 머물러 있는 줄로 생각해요. 지금의 신학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는데, 가톨릭을 인정하면 프로테스탄트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상대를 신뢰하고 이해할 때 내 신심을 해치는 게 아니라 더 풍성해질 수 있어요. 다양한 신앙 배경에 있는 이들을 만나는 일치의 경험이 없으면 자기 안에 갇힐 수 있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신앙고백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에서 공회는 가톨릭이라는 말인데, 교파적인 가톨릭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성,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보편적 교회, 서로를 가르는 경계를 넘어선 모임을 뜻하는 거예요. 프랑스 가톨릭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누군가 '우리 가톨릭'이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누군가를 배제하는 순간 진정한 가톨릭이 아니라는 것이죠. 교회가 모두를 아우르는 모임이 되는 게 본래의 의미에 맞지 않을까요? 울타리가 쳐 있다면 그걸 넘어서서 나아가야겠죠. 많은 신앙인들이 경계 안에서 안정을 도모하는 것 같아요. 낯선 건 불편하다고 느끼는데,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훈련과 의지도 필요하죠."

나도 떼제공동체를 처음 접했을 때, 개신교인가, 가톨릭인가 하는 물음을 먼저 가졌던 게 사실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기보다 기존의 분류체계에 끼어 맞춰 규정지으려는 관성적인 우문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만큼 기존의 분류에 갇히지 않는 게 떼제인 것 같다. 단순하고 짧게 반복되는 떼제 성가는 차이를 넘어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실제로 유럽사회에서 가톨릭이나 개신교, 정교회 등 여러 종교인들이 연합하는 자리에서 떼제는, 서로 마음을 열고 경계를 넘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중립지대, 공통분모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신한열 수사는 떼제 성가 한 구절을 들려주며 설명했다.

"떼제 전례는 시편을 인용해서 노래하고 기도할 때가 많아요. 많은 수도원 전통들도 그렇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 당신 손에 저를 맡기나이다' 하고 시편 구절을 읊으셨어요. 시편은 인간의 기도들이 다 담겨 있는 노랫말이에요. 여러 교파들이 모였을 때 먼저 함께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을 도모하면 훨씬 다를 수 있어요."


수도하고 순례하는 삶의 여정

떼제는 100여 명 형제들이 공동생활하면서 기도와 침묵, 노동과 청빈의 일상을 살아가는 수도공동체다. 2005년 선종한 로제 수사는 "떼제는 수도생활의 커다란 나무에 접붙인 새싹에 불과하다"고 했다. 800여 년 오랜 역사로 세계적인 규모를 지닌 수도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오늘날 가장 잘 새겨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로 떼제공동체를 지목하고 찾아오기도 했다. 신한열 수사는 1988년 프랑스 떼제에 가서 종신서원을 하고 30년 가까이 살아오고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등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려 하다가 정작 자신이 다른 이를 도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수도공동체를 들어간 것이다. 신한열 수사에게 어떤 신앙 여정에서 떼제 수사로 살아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저는 경상도 대구 출신이에요. 보수적인 지역에 있는 전형적인 유교가정에서 어머님이 먼저 가톨릭 세례를 받으셨는데 집안에서 특별히 신앙적인 갈등이 있지는 않았어요. 70년대 유신정권 시절 대구 사회나 교회 분위기가 사회적 관심이 적었어요. 함석헌 선생 같은 재야인사 강연이나 <씨알의 소리>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지요. 80년 광주민주화운동도 당시 대구에서는 유언비어라고 했는데, 광주에서 신학교를 다닌 선배들에게 간간이 들을 수 있었어요. 81년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사회과학도로서 인간과 사회와 역사와 하느님에 대해 질문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진폐환자들이나, 성남 인력시장 노동자들 이야기를 글로 썼지만 나는 무엇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20대 중반 2~3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책으로 떼제를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떼제에서 살게 되면서 삶의 일부가 아니라 평생을 사는 것,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바치기를 바라시는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신한열 수사는 처음 시작할 때의 동기나 이유만으로 수도공동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상기했다. 그도 떼제에서 계속 때에 맞는 소명 앞에 자신을 드리며 여기까지 왔다. 어느 곳이나 찾아가서 일치와 화해의 경험을 나누는 순례자가 지금 그의 모습이다.


동아시아 젊은이들이 서로 이해하도록

떼제공동체는 창시자인 로제 수사 선종 10주년을 맞는 지금도 여전히 매주 수천 명 젊은이들이 찾아온다. 떼제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젊은이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버지, 교회, 기성 정치인들의 권위를 거부하는 흐름 속에 젊은이들이 대거 찾아들자,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어떤 갈망이 있다는 것을 주목한 것이다. 신한열 수사가 동아시아 나라들을 순례하는 목적도 떼제에 찾아온 젊은이들을 만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살아가는 나라와 사회, 교회 정황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길을 모색하는 청년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깝긴 하지만 실제로 관계가 많지는 않아요. 일본도 한국도 옆 나라보다 미국이나 유럽을 바라보잖아요. 소위 한류라는 것도 촉매는 상업적인 것이지요. 상업적 이윤을 넘어 신앙이라는 공통기반으로 기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죠. 여전히 갈등하고 대립하는데, 정치인들이 할 역할도 있지만, 그리스도인, 특히 청년들이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첫 걸음은 서로 만나고 이해하는 거예요. 동아시아 청년들을 서로 엮어주려고 재작년 대전에서 동아시아 젊은이모임을 열었고, 올해는 홍콩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큰 규모의 청년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일치운동, 수도운동, 젊은이운동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떼제공동체는 떼제를 다녀간 사람들이 자기 일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신앙생활과 기도모임, 사회를 향한 섬김을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독려한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미지의 세계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움을 발견한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떼제를 성지처럼 여기거나 공동체 규모를 늘리기보다 누구나 그 가치를 자기 일상에서 녹여내는 게 떼제의 삶이라는 것이다.

신한열 수사님은 떼제모임을 통해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이 땅에서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삶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해주곤 했다. 이번에도 바쁜 일정 중 하루 종일 동행하며 대화하는 내내, 우리가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더 듣고자 했고, 함께 아이들 키우며 더불어 생활하는 모습을 응원하셨다. 행복하게 어우러져 삶을 나누되 일상과 관계를 끊임없이 수도하는, 균형 잡힌 생활영성이 그곳과 이곳을 이어주고 있는 듯하다.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과 멀리 보이는 판문점.

사람은 드나들 수 없는 임진강 한가운데 있는 섬, 초평도를 배경으로 하여 찍은 평화 순례 단체 사진.


최소란 | 지난해 가을 강원 홍천으로 귀촌해 여러 이웃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글로 나누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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