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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에너지를 공부하고 만드는가
삼일학림 만들기 수업을 마치며

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 ‘만들기’ 시간에 ‘전기에너지’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전기’라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태양광 가로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까지 전기와 관련된 여러 영역들을 공부했고 우리 생활에 밀접한 기술들인 난방이나 물, 하수 등의 원리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멀리 있던 주제들이 우리 삶 가까이 다가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편집자 주>.


내 손과 발에서 나오는 적정기술

살다가 불편한 일이 생기거나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으레 전문가를 부르고, 누리장터를 뒤적였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품삯을 치르고, 수많은 상품 더미에서 허우적댈 때마다 눈 뜬 장님이 된 기분이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만들어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제한된 선택지 앞에서 파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소비자는 언제나 ‘을’이고, 자본의 '노예'일 뿐임을 공부하며 깨닫습니다.

수업 이름이 ‘만들기’라서 이것저것 만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근대 기술문명을 두루두루 살피고, 따져보는 공부였습니다. 복잡한 화학식이나 물리 공식까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여태 생각거리로 삼지 못했던 여러 대목을 눈여겨 볼 수 있었습니다. 돈이나 물건을 헤프게 쓰는 꼴을 두고 ‘물 쓰듯 한다’고 하지요. 그렇게 부족함 없이 물과 전기를 쓰면서 기껏 하는 생각이 요금 걱정이었는데,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이 머무는 도시의 밑바탕이 결국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전기줄, 상하수도관, 가스관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런 기반 시설 덕분에 편리한 도시 생활을 누린다지만 어느 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휘청하고 흔들리는 게 또한 도시인의 형편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제 삶을 제 힘으로 너끈히 감당하며 살았던 옛사람들과 지금의 나를 견주어 봅니다. 전근대를 싸잡아 어리석고, 불편하고, 위험한 야만의 시대로 여겨왔는데 그런 거칠고 불편한 환경이 오히려 사람을 더 슬기롭고, 줏대있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젠가 ‘인간동력’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손발을 쓰지 않으면 정신이 타락하고 만다는, 나이 지긋한 적정기술 발명가의 진지한 경고도 다시 곱씹게 됩니다. 온갖 첨단기술을 한데 모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보다 자기 형편에 맞게 부지런히 몸과 머리를 쓰며 살았던 시절의 슬기와 솜씨를 잘 키워가고 싶습니다.

대영 | 아이 돌보는 핑계로 한 해 쉬며 시골살이 느긋하게 즐깁니다. 밝은누리움터 푸름이들과 우리말 공부 즐겁게 하고요, 뒤늦게 익힌 자전거로 호젓한 논밭길 거니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내 일상과 맞닿는 기술들 앞에 주체적으로

세 달에 걸쳐 난방, 전기, 대안에너지, 물(수도)란 큰 줄기로 우리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두루 살피는 공부를 했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어느 만큼 택하고 살 것인지 함께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배웠다. 예를 들면 지하수 파는 방법이나, 그것에 드는 비용들까지도…. ‘이런 세세한 내용까지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뚜렷이 정리되었다. 주체적으로 어떤 기술, 재료를 받아들일 것인지, 어느 만큼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하려면, 내 삶과 맞닿아 있는 기술 분야들을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이런 세세한 내용까지’라고 했지만, 사실 이 말에는 지하수를 파는 방법 같은 것들은 전문가들 영역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가령, 홍천에서는 수돗물을 쓰지 않고, 지하수로 모든 물을 해결한다. 만약 우리가 지하수가 공급되는 원리나 구조를 알고 있다면, 지하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마냥 전문가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직접 지하수를 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문가들이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우리 흙, 지질에 알맞는 펌프는 무엇인지, 펌프 종류에 따른 가격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힘을 기르고, 맡기게 되더라도 다 맡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드는 재료나 시공방식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의의제기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핵 발전에 기대지 않는 마땅한 대안에너지를 찾고,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대안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대안에너지에 맞게 삶을 바꿔가는 것이라고 배웠다. 근원적인 대안은 대안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필요를 넘어 과하게 소비하는 삶은 그대로인데 기술만 핵 발전에서 태양열로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둔 채 비교한다면 효율 면에서는 태양열은 핵 발전에 견줄 것이 못된다. 그러니 에너지를 적게 쓰는 단순소박한 삶의 양식으로 우리 삶의 양식을 바꿔가지 않으면 대안에너지도 큰 뜻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함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동지들이 곁에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대안에너지 공부를 아무리 해도, 그것을 구현해갈 동지들과 마을이 없다면, 관념적인 배움, 이것저것 해보는 실험에 그칠 텐데, 이렇게 함께할 동지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내 삶의 자리에서 쓰이고 있는 다양한 기술들에 대한 배움과 더불어 쓰이면 좋을 다양한 대안기술들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고 싶다.

주은 | 학림에서 벗들과 함께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5년차 학생입니다.



캔과 잼 병 되살려 멋진 조명 만들다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칠 때 늘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전기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멀게 느껴지는 원리나 교과서 실험들만 주로 다루다보니 실제 일상에서 쓰는 전기를 이해하는 건 많이 부족했습니다. 전기는 현상일 뿐 실체가 아니기에 우리 삶에서 감각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 무분별하게 전기를 쓰는 게 아닐까하는 이야기 들으며 많이 공감했습니다. 실습으로 작은 발전기를 만들던 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측정기계에 연결해놓고 보니 작은 양의 전류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엄청나게 전기를 쓰면서 원자력발전을 반대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이야기 들으며 내가, 우리가 얼마나 쓰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어요. ‘이건 LED라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니까 괜찮아.’, ‘이건 필요한 거니까 꼭 써야 해’ 하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에너지를 너무 쉽게 쓰고 있진 않은지 잘 살펴야겠습니다.

발전기 원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들어보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석이 움직이면서 힘을 미치는 공간이 달라지고, 그 변화는 다시 새로운 힘을 만들어냅니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있고, 닿지 않아도 힘을 끼치는 자기장과 전기장, 이 둘의 관계와 원리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필요한 곳에 찾아가 스위치를 달고, 조명을 설치했던 실습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집에 있는 전등 하나가 스위치를 꺼도 계속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와 있어서 마음에 걸렸는데, 그것이 한 방향으로만 전류가 흐르는 LED 특징 때문임을 배운 뒤에는 집 스위치를 뜯고 실험하는 마음으로 전선 잇기를 다시 이리저리 해봤습니다. 이제는 전등이 완전히 꺼지는 방법을 찾아내 기쁩니다.

지난 시간에는 캔과 잼 병을 되살림해서 멋진 조명 만들기를 했습니다. 밝은누리움터에서 밤길을 환하게 비춰줄 작품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만들었어요. 이미 생동중과 학림에서 집짓기나 만들기 수업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은 학생들은 역시 나무 다루는 솜씨가 남다릅니다. 여러 손길들 닿아 만들어진 전등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바깥에서 주어진 에너지나 기술에 기대서만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 주인 된 마음으로 살며 나를 새롭게 하는 공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진영 | 밝은누리움터 학생들과 더불어 배우고 수학, 과학 가르치며, 마을에서 아이들 함께 키우고 즐겁게 공부하며 지냅니다.


전기 생산구조 갖춘, 송전탑 필요 없는 마을 꿈꾸며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 겨울에 따뜻한 움에서 공부하는 것. 아침에 머리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 것…. ‘사람’이라는 동물은, 이 세상 어떤 동물보다도 ‘에너지’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극히 일상적인 에너지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른 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다. ‘한몸살이’의 원리가 그러하다. 에너지 절약 면에서 긍정적인 노력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나무를 때서 겨울을 나는데 한 겨울에 타는 나무의 양이 상당하다. 어떻게 하면 나무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자연을 더욱 아끼며 살아갈 수 있는지, 잘 고민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무수한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전기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전기에 의존하지 않을 방법은, 풍력, 조력, 지력, 수력, 태양열·광을 이용한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설치하는 데에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것은 태양광 발전기(비교적 싼 가격에 판매하고 설치하기도 쉬움). 사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지역 먹거리를 잘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전기도 지역에서 생산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금 현실은, 서울에서 사용하는 많은 전기를 대기 위해 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긴 전깃줄로 끌어오는데, 전기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 손실이 있다. 송전탑 문제도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먼 땅까지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송전탑이 불가피하다. 전기를 남용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송전탑 건설을 반대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욱 더 주체적이고, 마을 중심적인 전기 생산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학교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쓰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의 양에 압도되어 어쩔 수 없다며 무릎 꿇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 잘 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앞으로 긴 호흡으로 진득하게 잘 배워가고 싶은 주제이다.

한백 | 학림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 한백입니다. 작은 생명변화에 깨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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