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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직장인이란

천안에 있는 제조회사에 다닌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크게 세 가지 제품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직무를 맡아왔습니다. 그 사이 회사의 주력 제품도 조금씩 바뀌어서, 지금은 IT 제조업,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라 하면 작게는 핸드폰에서 크게는 텔레비전이나 전자광고판까지 범위가 넓습니다. 화면을 보여주는 장치기술이 LCD(액정표시장치),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같은 평면제품으로 발전하면서, 추가되는 기능성 부품들도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저희 회사는 더 밝고 선명한 화질이 나오도록 도와주고, 전자파 등 약점을 보완해주는 기능을 하는 필름제품을 만들어서 핸드폰이나 TV를 만드는 전자회사들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계속 커지면서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고 그중에는 외국기업들도 많습니다. 또 원자재의 수입 비중도 크다 보니 환율변동, 외국의 경제정책에도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처음 듣는 이름의 업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는 더 직접적인데, 디스플레이 분야도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시장의 판매 부진은 실적 저하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거시경제, 외국경쟁사, 고객정보에 더 신경 쓸 것을 요구합니다. 최신기술 동향을 살피고,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원자재를 검토하고, 생산성이 높은 설비를 도입하는 것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작년에는,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종류와 기준점수를 상향조정했습니다. 커트라인에 도달하지 못하면 진급과 연봉에도 불이익이 있게 되었지요.

직장에 다니다 보면, 만능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왜 하는지도 모르고 수동적으로 일하거나,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업무가 주어지면 먼저 업무의 배경과 범위를 확인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공유합니다. 물론 잘 소통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기 이유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원인은 어쩌면 한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업무환경이 먼저인지도 모릅니다.

언론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직하고 싶은 이유로 ‘동료와의 관계 어려움’이 항상 1~2순위로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매일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일하는 직속상사와 부하사원이지요. 직장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입니다. 저희 회사도 몇 년 전부터 멘토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로 신입사원과 연차가 짧은 직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밀린 숙제하듯 갖는 술자리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급한 문제가 생길 때 동원하려는 '수단'이나 '인맥'을 넓히기 위한 사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지'로 진실하게 만나야 하는 건 치열한 직장현장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간혹 흡연실에 놀러 가는 이유도 그곳이 평소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컷 푸념만 늘어놓고 대안이 없다고 체념하거나, 우리는 다 잘하는데 누구누구가 문제라는 편 가르기식 결론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지요.

거대 담론과 실적 압박에 불만이 들어도, 어느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기를 탓하며 순응하는 직장인이 많은데, 아마 혼자서는 다른 생각이 쉽지 않고 어떤 공포를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전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유도합니다. 텔레비전 관련 일을 하지만 정작 집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 제 삶을 나누면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얼마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인가 이야기합니다. 삼성전자 휴대폰의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휴대폰의 수는 계속 줄고 있으니, 10조가 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실제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게 어느 정도일지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는 생활태도나 업무습관도 살피며 잔소리를 하며 지냅니다. 상사들에게는 차 마시다가도, 회의 말미에도 고민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때도 경험했습니다. 의미 있는 직장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토론하며 때로는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서로를 향한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소통과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결국 사람과 사람의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의를 지키고, 의리 있게 만나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제 삶을 지켜주는 공동체에서 배워가고 있는 것 그대로 노력하는 도시직장인으로 지냅니다.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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